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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삶에서의 주변화 2

김희주는 학교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특 별함을 가진 개인이 언제나 자신의 특성을 다수에게 맞추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이라는 곳은 학교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된다.


학교가 아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예 기치 않게 만난 조그마한 턱 같은 곳도 내려가기 어렵기 때문에 벽을 찾아서 짚어야 하 고, 무거운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장애인이 사용하는 자동문을 찾아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주 멀리 돌아가야 하거나 사람들의 걷는 속도를 맞출 수 없어서 택시를 타거나 기사 아 저씨 차를 타고 특정한 장소에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가 보다고 오해 받거나, 상사에게는 마음 상하는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나는 우연히 어느 의사로부터 내가 어떤 신드롬을 갖고 있다고 들었고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의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심포지엄 준비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하지 못했고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아주 잠깐 생각했다. 나에 대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이기적이고 나쁜 사

람으로 남아야 할까.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듣고는 당황하고 자신이 나에게 한 말에 대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내 질병과 나의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지 않고 그들에게 변명처럼 들리지 않도록 나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효율성을 갖고 있지 않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주류로 참여하기 어렵다(Barnes, Mercer & Shakespeare, 1999; Wendell, 1996). 연구참여자는 사회에서 원하는 속도와 방식으로 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첫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김희주는 이때가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질병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라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 분야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정부 산하 연구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많이 기뻐하셨고 그래서 나도 더 좋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박사들은 능 력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친구들에게 일초도 쉬지 않고 일한다고 말할 정도로 모두들 바쁘게 일했다. 나는 오래 앉아있거나 서있기가 어렵기도 하고, 일하다가 일어나서 잠시 산책을 하거나, 눕거나, 쉬어주어야 하고 몸이 많이 아픈 날은 원래 일하던 대로 글을 써 주기가 어렵기도 했다. 나는 이런 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능력을 높이려고 하고, 아프지 않은 때에도 가능하면 사람들과 잡담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오랜 시간 일하기보다는 낮과 밤 그리고 주중과 주말로 업무 시간을 나누어서 글을 썼다. 하지만 내가 점심시간에 차에 가서 혼자서 누워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외부 일을 하는 것 은 아닌지 의심받기도 하고 꾀를 부리고 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다 르고 아프다는 것이 사실 전혀 속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신 세를 한탄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나서는 처음으 로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닌데 너무 속상하다고 엄마를 붙잡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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