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3

김희주는 현재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자주 다치고 통증과 체력적인 한계로 파생되는 장애로 지속적으로 담당 의사를 방문한다. 질병, 장애, 통증에 대한 김희주의 몸에 대한 설명과 경험은 대개 의료전문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환자들이 가지는 불평거리나 과도한 걱정으로 취급받곤 한다. 그리고 김희주는 의료전문 가로부터 그녀보다 더 심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적절한 운동이나 물리치료 등의 지속적인 노력을 강요받는다. 모든 질병, 장애, 통증이 개인이 가지는 노력의 실패 로 여겨진다는 것은 서양과학이 인간의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Zaner, 1983). 의사의 처치를 따르면 괜찮아지고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족들의 위로 는 그녀에게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과학이 모든 것 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과 의학이 몸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의료관계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현실 을 부정하게 만들기도 한다(Wendell, 1996). 이러한 과정을 통해 김희주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Frank, 1991).

나는 건널목을 건너다가 쓰러졌고 차에 치였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들었다. 병원에 입원 한지 보름이 지나갔지만, 넘어지면서 몸의 이곳저곳에 입은 타박상 부위는 낫지 않았고 여전히 부어있었고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의사는 엑스레이 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상하다면서 좀 더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브스나 보조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많이 다쳐봤기 때문에 낫지 않을 것이 라서 기브스나 보조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못하고 관 속에 누워있는 것 같은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뭐라도 해봐야 한다면서 물리치료나 침을 맞으러 다녀보자고 했다. 그러면 나을 것이라고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10년 전에 다친 곳도 여전히 아프다고 말했 고, 어떤 치료도 나에게 소용없다고 했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엄마가 울어도 이번에는 못해준다고 했다. 엄마는 화가 나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 다시는 꺼내지 말라고 하셨고 좋은 방향으로 생 각하자고 했다. 

퇴원을 준비했다. 언니는 갑자기 뼈에 좋다는 홍화씨를 심어서 농사를 짓고, 병원에 팔 아서 다 같이 돈을 벌어 보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형부와 그 사람은 내가 이걸 먹고 나 으면 떼돈을 벌 수 있고, 우리는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좋아했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업하다가 망하기 일쑤라면서 다 같이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아빠는 의사가 피부가 새까만 것이 공부는 안하고 골프만 친 얼굴이라고 그 사람이 한 말은 마음속에 담아둘 것 없다고 했다. 우리들은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인신공격은 하지 말자고 하면 서 시시덕거렸다. 퇴원수속이 늦어진다고 제부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기다리는 게 어 떠냐고 제안했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던 엄마는 눈물을 닦으시더니 내 허리를 만 져보고는 그동안 꼼짝을 안 해서 내가 살이 찐 것 같다고 아이스크림은 안 된다고 한다. 아빠가 웃으시니 엄마는 그래도 딸이 날씬한 것이 좋다고 하신다. 엄마는 미국에서 의대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손녀에게 꼭 의사가 돼서 이모를 낫게 해주라고 편지를 보내겠 다고 하셨다. 항상 우리 가족들을 보면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빠는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 안에서 같이 행복을 찾아보자고 하셨다. 나를 닮은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딸을 낳으면 나도 혹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갈 수 있 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기브스나 보조기를 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 매일 아프겠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 자주 행복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