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을 걷는 아이에게 #1

1호에 대한 노래

by 어깨빌려주기

우리 집에는 세 아이가 있다.


사춘기의 문 앞에 선 아이,
그 문을 열고 터널을 걷는 아이,
그리고 이제 막 그 문을 닫고 나올 아이.


오늘은, 그 중 첫째 이야기다.
내 아이, 1호.




1. 풍랑의 시작


몇 년 전부터 아이는 보이지 않는 풍랑을 지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그 속은 깊고 거칠었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균형을 잃고 천천히 기울어가는 배 같았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우울해. 정신과에 가보고 싶어.”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웃음 많고, 학교 잘 다니고, 학원 잘 다니고, 바이올린 잘 다니고, 엄마 말 잘 듣던 아이였다.

책도 많이 읽고 동생들과도 잘 지내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던...그런 모범생의 전형 같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우울하다고?

“네가? 우울증이라고? 말도 안돼~”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거부였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네가 해 보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우울증 테스트..그거 해서 우울증 안 나오면 이상한 거야.”

“지금 잠깐 힘든 거 아니야? 정말 맞는 거야?”

그때 나는 몰랐다.
내 말이 아이를 얼마나 깊게 찔렀는지.
얼마나 오래 남을 상처였는지.

그건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2. 기능적인 엄마의 무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어머님, 아이가 원하면, 병원에 가야 하는 거예요. 저도 산후우울증을 앓아보고 상담을 받아봐서 아는데요..

병원에 당장 가세요..가셔야 해요.”

위클래스 선생님과의 상담이 이어졌고

위클래스 선생님도 꼭 병원에 가야 하고 원하시면 추천을 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정신과 예약이 빡세서 한달 뒤에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안정을 찾았다.


그동안 아이는 예술제에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는 그 날. 눈이 엄청나게 내리던 날.

붉어진 볼로 차에 타며

오늘 공연 박수를 많이 받아 너무 좋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가 너무나 예뻤다.


진료는 20분동안 진행되었고 우울증 관련 약을 받아왔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나는 가슴을 쳤다.
나는 너무나...너무나 무지했다.

이렇게 존재만으로 예쁜 아이에게
나는 과하게 ‘기능적인 엄마’였다.


"했어? 안했어?"

"읽었어? 안 읽었어?"

"풀었어? 안 풀었어?"

이런 빈곤한 문답이 우리의 '대화'였다.


그날 밤, 자는 아이 머리맡에서
나는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미안해...엄마나 너무나..미안해.”

하지만 그 미안함이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는 없었다.


3. 사랑이라는 이름의 간섭

돌이켜보면, 나는 참 집요했다.
책을 들이밀고, 문제집을 내밀었다.
“중학생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해.”
한번 앉으면 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개념을 설명했다.
문제를 풀게 했다. 아이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으로 위장한, 관심으로 포장된 간섭이었다.

나는 아이의 컨디션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됐다.
내가 진도를 알아야 마음이 놓였다.
내가 스케줄을 내가 짜야 안심됐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큰 잘못은 아이가 혼자 못할 거라고 믿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정해놓고, 그대로 하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조종하는 인형이 아니었다.

똑똑한 아이는 이제 엄마 손을 놓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용기있게 말해낸 것이었다.



4. 손을 놓자, 아이가 살아났다

병원에 다녀온 날, 나는 결심했다.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가게 두자.
나는 아이의 공부에서 손을 뗐다.

간섭에서 벗어난 아이는, 조금씩 살아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연필 대신 기타를 잡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선생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5. 또 다시 만난 벽

하지만, 세상은 늘 새로운 벽을 준다.
고1 담임선생님은 강압적인 스타일이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놓고 그대로 따르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쪽지시험 성적대로 자리 배치,
생기부에 행동평가 기록을 남긴다는 경고.
불평으로 퉁쳐버리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게 이 모든 것이 우리 1호엥게는 압박이었다.

예민해진 아이는 다시 무너졌다.
신체화 증상을 호소했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해가 질 때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노을을 보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진료확인서를 떼러 간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엔 닭개장을 사 오며 드라이브를 했다.

차 안에서 아이는 종종 말이 없었다.
창밖만 하염없이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음이 열리는 날이면
앞으로의 꿈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12월의 끝자락.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상담 중에 죽고 싶다고 했어요. 비밀보장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 어머님께 전화드립니다.”

그 말은, 내 심장을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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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위의 아이


지금, 아이는 보통의 길을 걷지 않는다.
쭉 뻗은 대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오솔길.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길도 아름답다는 것을. 같지 않다고 틀리지 않다는 것을.


길가의 풀꽃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아이이길 바란다.

1호는 바다 같은 사람이다.
넓고 깊고 검푸르다.
아이는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을 기뻐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것에 누구보다 즐거워한다.

그맘때의 나보다 훨씬 깊은 고민을 한다.
나는 아이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조금 다르면 어때? 조금 느리면 어때? 뭐 어때?

평균과 다르면 어떤가.
이미 평균은 끝났다. 토드 로즈가 말했듯이.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소수자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 다른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삶의 영토를 넓혀갈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매번 내 인생을 행복한 경험으로 채우고 있다면 조금 느려도 상관없다.

어쩌면 1호는, 어마어마한 것을 써내려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서 직관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