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을 걷는 아이에게 #2

아이의 마음을 만난 날

by 어깨빌려주기



지난 글에 이어..



1. 오늘, 아이의 마음을 만난 날

그날은 새 학교에서의 첫 출근일이었다.

설렘으로 시작된 하루가 한 통의 전화로 무너졌다.
오후, 심장이 내려앉는 소식을 들었다.



2. 첫날, 그리고 무너짐

하필이면 첫 출근이었다.
왜 하필, 첫 출근이 오늘이었을까.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담임선생님께 긴 문자를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무서운 선생님이라 소문난 분이었지만, 그도 두 아이의 엄마였다.
주고받는 문자 속 짧지만 따뜻한 말들이 내 심장을 어루만졌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아이가 상담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부모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했다.
“정면으로 들어가셔야 해요. 집에 가시면 아이의 마음을 꼭 물어보세요.”

아이에게서 벽이 보였다고 했다.
넘을 수 없는 그 벽은 무엇일까.





3. 아이가 꺼낸 이야기

이번엔 조금 덜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아빠가 지속적으로 상처를 줬다고..
무엇인지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어른의 기억은 흐리지만, 아이의 기억은 날카롭다.

아직 그 상처는 아이의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느낀 남편에 대한 감정이 아이에게 거울처럼 반영되었다.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있다.

나중에 아이는 그렇게 표현했다.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아."

아이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아빠가 충분히 넘치게 좋은 사람이지만...

그 다정의 방식이, 아이는 아직 많이 어렵다고 했다.



4. 되돌아 보는 기억의 조각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이가 변기를 자주 막아 내가 뚫었던 날들.
그때 아이아빠는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공부 시간이 지나 내가 잔소리를 하면 남편은 큰소리로 한마디씩 했다.
일이 너무 바빠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던 사람.
얼굴을 맞대는 시간보다, 큰소리가 더 많았다.

그게 무서웠을까.
아니면 내가 불안해서 몰아붙였던 시간이 더 무거웠을까.



5. 내 불안이 만든 벽

남편과 달리 나는, 또...

밤마다 자책했다.
아이에게 영어책과 수학문제집을 들이민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 여섯 시마다 자는 아이를 깨우던 날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됐는데.
맛있는 밥 한 끼면 됐는데.

나는 뭘 위해 그랬을까.
‘이어지는 관계’보다 ‘좋은 결과’를 사랑이라고 믿었다.
내 불안 때문에 아이를 경주마처럼 몰았다.
옆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채찍질했던 나.

그동안 아이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몰랐다. 무지가 죄가 되는 것을 깨달은 처절한 순간이었다.


남편은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했는데 나는 엄마로서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아이의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인 것처럼 굴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내 마음 자체가 너무나 무거웠다.

아이와 이야기하고 아이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감정이 들 때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6. 다시 연결하기

토요일, 우리는 거실에서 함께 TV를 봤다.
나는 1호의 왼쪽 귀 피어싱 부위를 소독해주고, 마스크팩을 붙여주었다.
자존감,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당에 가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갔다.
깨끗하게 세탁한 하얀 셔츠, 새 재킷, 미니스커트, 운동화.
아이의 모습에 신부님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1호야? 1호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자랐네!”

사람들이 아이를 반겼다.
그동안 아이가 쌓아온 예의와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7.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며칠 뒤, 아이는 배가 아프다며 조퇴했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위염,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죽을 사와 함께 먹고, 집에서 푹 쉬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학교에 갔다.
얼굴이 밝아졌다.
스트레스가 줄면 몸도 나아진다.



8. 감사의 마음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을.
하늘색과 분홍빛이 섞인 저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 평온함에 감사한다.

오늘도 잘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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