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독후감-유년기인류학

인류학자가 본 어린이의 삶

by 어깨빌려주기

지난 금요일, 저녁에 급한 약속이 생겨 퇴근하고 2시간여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아싸!!

직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주차하고 2층 밭 뷰가 멋드러진 유리창을 마주한 소파에 앉아

<유년기 인류학>을, 1시간 반 동안 쭈루룩 훑듯이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인류학자가 본 어린이의 삶>이다.

고대부터 현대사회까지,

부족마다, 지역마다, 문화권마다 어린이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에 대한 거대 모음집이다.


읽다가 시간이 되면 책갈피를 꽂아두고 다음에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궁금해서 속독하듯 읽었다.

그 중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몇 군데 있다.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읽었던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에 나오는 아마존 예콰나족의 육아방식이 떠올랐다.


한번 옮겨보겠다.

이렇게 인상깊은 구절을 옮겨놓는 것은 나중에 기록을 찾아볼 때 지금과는 다른, 더 확장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누가 어린이를 체벌할 수 있는가?-

어린이들은 이집 저집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조금 더 자라면 며칠거리에 있는 친척마을까지도 혼자서 다녀오곤 한다. 그래도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칠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부모에게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녀를 소홀하게 관리하는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책망을 듣는다.

비록 필요할 때는 이웃 사람이 아이를 대신 봐줄 때가 있지만,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이를 꾸짖거나 훈육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른 사람의 자녀를 혼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동시에, 그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똑바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315p


-만약 어떤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해당사회에서 필수적인 고통스러운 성인식 의례를 거부한다면 그 자녀는 사회에서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그 사회의 문화적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자녀의 성장을 방해하고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부모이며 이는 비판의 대상이다. 비서양권 사람들도 서양의 육아 방법을 보고 아연실색할 때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종종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인류학자나 선교사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거나 자녀를 키우는 올바른 방법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육아철학을 기준으로 보자면 영유아를 한방중에 홀로 침대에 놔둔다거나, 정해진 시간이 되기 전에는 음식을 주지 않는다거나, 아기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행동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323p



-<통과의례(Les Rites de Passage)>-는 1903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1960년 영어로 번역되었다.

반 게넵은 통과의례를 "장소, 상태, 사회적 지위, 나이의 모든 변화에 수반되는 의례"라 정의했다.

통과의례는 출생, 성인식, 결혼, 죽음 등과 같은 인간 생애의 중요한 고비에서 치르는 의례다. 반 게넵은 모든 사회와 개인의 생애는 의례를 통해 문지방을 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이는 죽음과 새로운 탄생의 연속이다. 이는 시작인 동시에 끝이며, 기다림과 휴식을 거쳐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고 말했다.-387p


-어린이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행동이다. 어린이 중심의 인류학은 어린이들을 일차 정보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양의 유년기 개념에 반론을 제기하고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요청한다. 이제는 어린이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며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관념이 상식적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어린이를 사회 주변에 서 있는 커다란 구경꾼 집단으로 보지 않으며 그러한 관점은 어린이들의 고유한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지금의 어린이 연구방법 역시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25p


-성인 인류학자들은 때로는 어린이를 작은 이방인으로 여기지만 그들을 보다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어린이들 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4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