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성친구에게 인사하고 사유함
출근길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요즘 나는 ‘사랑의 통로로 쓰임받고 싶다’는 바람을 품는다.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두잉(Doing)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빙(Being)으로서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지난 1년간 읽어온 책들,
들었던 강연과 나눈 대화들을 떠올리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얼마 전, 우리 집 2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지난주 공연장에서
아이의 무대를 보러 온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나 인사하며,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이성 친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물음을 안게 되었다.
그 순간을 선물해 준 2호와, 또 2호의 짝꿍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는 그 아이가 가정에서 존중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경험을 우리 2호와 함께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우리 아이도 가정 안에서 존재 그대로 존중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맺는 관계 안에서도 존중과 수용이 넘실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말하기 전에 해도 되는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리해 보고,
행동하기 전에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보며,
고운 눈길로, 좋은 기분으로 지내기를 바란다.
혹여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의 장점을 먼저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만남이 각자의 성장에도 든든한 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정현종 시인의 그 유명한 구절처럼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모든 인연을 소중히 아끼고, 잘 다듬어가기를 소망한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출처 : 정현종의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시선집 <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