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감싸고 있던 고치에서 머문 시간은 다 필요한 시간이었어.
조금 전,
딸에게서 너무나 가슴 벅찬 말을 들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브런치에 접속했다.
우리 1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우울증을 겪었다.
병원 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약물 복용까지 이어졌지만
약이 그다지 잘 듣지 않아 늘 불안한 기운이 감돌곤 했다.
두 달 전쯤, 아이는 스스로 약을 끊었다.
“이제는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 불안이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나는 일부러 웃고, 아무렇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그러던 지난주 금요일, 아이에게 사고가 있었다.
타고 있던 버스가 앞차와 충돌했고,
기타를 등에 멘 채 창가에 서 있던 아이는
운전석 쪽으로 미끄러지며 오른쪽 목부터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경찰에서 불러준 119를, 보호자 없이 혼자 타고 응급실로 향한 일.
그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는 큰 심리적 충격이었다.
사고 다음 날부터 아이는 쉽게 짜증을 내고,
감정이 폭발하듯 엉엉 울었다.
그때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아이를 앉히고
이불로 감싸 안으며 조용히 감정을 토해낼 수 있도록 아이를 조용히 지지하며 지켜보았다.
이후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약물치료와 함께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는 놀랍도록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
혼자 치료를 받고, 산책을 하고,
어제는 마침내 달리기까지 했다.
“괜찮은 거야?”
몸이 뻐근하다고 했던 아이가 뛰기 시작했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운동 좋아하지 않던 아이인데...
한편으로
운동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어제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말했다.
“엄마. 이제 진짜 운동해야 할 것 같아. 너무 체력이 딸려.”
그 말이 어쩐지 기특하게 들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평소 오후 3시쯤에야 일어나던 아이가
아침 9시에 일어나 씻고,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갔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오옷!!”
저녁에는 학원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스스로 집에 돌아왔다.
데리러 갈까 했는데,
양치하고 세수한 뒤 “엄마, 졸려.. 자야겠어.”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한약을 들이킨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있잖아.. 나 어제 달리러 나갔잖아.
그리고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갔어.
너무 갑자기 달리면 다칠까 봐 빠르게 걸었는데
진짜 신기한 걸 발견했어.
예전엔 늦게 일어나면 항상 마음이 우울했는데
일어나자마자 운동하니까…
우울한 마음이 하나도 없어. 진짜 신기해.”
“와! 우리 딸 그걸 직접 느꼈구나. 정말 대단하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거든.
다이어트 관심 많은 친구가 말해줬어.
밤에 운동하는 것보다 아침 운동이 훨씬 좋대.
앞으로 그렇게 해보려구.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
그 말을 듣는데, 정말 소름이 돋았다.
“나 요즘 레슨도 대충하고 연습도 제대로 안 했어.
그래서 원장님한테도 말했어. 나 좀 굴려달라고.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운동 열심히 해서 전에 샀던 바지를 꼭 입고 싶어.
근데 또 작심삼일이 될까봐 좀 무서워.”
“괜찮아. 하루의 마음이 내일의 이틀을 만들고,
그 이틀이 삼일이 되지.
그 하루의 경험이 이미 너를 움직였잖아.”
“콘서트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거든.
그때까지 식단도 잘 지키고 운동도 해서
내가 마음에 드는 몸으로 가고 싶어.
그리고 이제 엄마, 엄마가 싸준 도시락 말고
건강한 재료가 뭔지 공부해서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보고 싶어.”
“와… 우리 딸이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엄마는 정말 감동이야.
엄마가 예전에 말했잖아.
방에 있는 시간도 헛된 게 아니라고.
그건 고치 속에서 힘을 모으는 시간이었을 거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요즘은 뭐가 잘 되는 것 같아.
우울증 약을 먹을 때는 다른 감정까지 차단돼서 살이 찐다고 그러더라구.
근데 약을 끊고 나니까 훨씬 좋은 것 같아.
이제 엄마에게 말하는 거야. 나 한 시간 안에 잠들 것 같아.
만약 안 졸리면 다시 나올게 ㅋㅋ”
“우리 딸, 정말 훌륭하다. 엄마 진짜 소름 돋았어.”
그날 밤,
딸이 잠든 후에도 카톡이 도착했다.
빼빼로 선물 이야기로 시작해
엄마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은 메시지,
그리고 나의 답장.
이런 카톡을 주고받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충만한 느낌이 이런 것인가.
이 대화를 하기 위해
나는 그토록 필사를 하고 일기를 쓰고 마음수련 영상을 보고
집밥상담소의 애리님의 말에 그토록 이끌렸었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조언이나 충고 같은 말이 아니었다.
마음을 감싸주는 공감과 자기인정, 자기수용, 타인이해와 같은 언어였다.
나 또한...
그렇게 수용하고 인정하는 언어를 건넬 줄 아는
경험을 통해 그렇게 감싸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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