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님의 글쓰기 12강 과제 - 1학기를 마무리하며
어른 팔뚝길이만 한 무가 도마 위에 올려져 있다. 나는 그것을 서너 덩어리로 큼직하게 나누었다. 그중 한 덩어리에 등분을 내고 얇은 직육면체 모양으로 썰기 시작한다. 사각사각 무 써는 소리와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온다.
속으로 생각한다. 겨울 무가 동삼(冬蔘)이라고, 몸에 좋을 뿐 아니라 국물 맛도 한결 깊어질 거라고.
그런데 이내 손목에 묵적지근한 감각이 전해진다. 무 하나를 동일한 크기와 얇기로 썰기가 은근히 쉽지 않다. 처음엔 뒤쪽이 비칠 만큼 투명하던 무 조각이 점점 굵어진다. 어느 순간 깍두기처럼 두꺼워진다.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온다. 아무렴 어때, 큰 솥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아무도 몰라.
하지만 식탁에 올리기 직전, 그릇에 담을 때가 되면 드러난다. 반듯한 직육면체들 사이에서 유난히 뭉툭한 한 덩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본다. 비스듬히 대충 썰린 무 조각을 얼른 나의 국그릇에 퍼담는다.
나의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다. 원대한 구상을 품고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거나 본질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리기 일쑤였다. 조급한 성격이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그러다 두 달 전, 이웃 작가님들의 글방에서 우연히 글쓰기 수업 소식을 들었다. 신청 댓글을 올리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쿵덕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어둠을 뚫고 나오던 새벽이었다.
과연 내가 신춘문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암만 생각해도 꿈속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이전까지 소설을 써 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다. 단지 책 읽기를 좋아하고 뭐든 끄적끄적 쓰기를 즐겨했을 뿐.
그랬던 내가 바쁜 월요일 아침마다 휴대폰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숙제를 빨리 확인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막상 숙제를 열어보면 그때부터 고민에 빠져 들었다. 묘사하기부터 단문 쓰기, 감정 표현까지 어디 하나 쉬운 구간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코스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였다. 알고 보니 이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모든 글에서 매우 요긴한 장치였다. 독자가 마음속으로 장면을 그려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걸핏하면 앞질러 말을 쏟아내곤 했다. 그만큼 설명하기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다.
이전까지 나의 글쓰기가 팔뚝만 한 무를 듬성듬성 썰어 뭉뚱그리는 쪽이었다면 이 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채를 썰었다. 문장을 잘게 자르고,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정윤 작가님의 섬세한 댓글과 함께 하는 작가님들의 글이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 간혹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일부러 읽지 않기도 했다. 혹시나 따라 쓰게 될까 봐 염려되었다. 참고서의 답안지를 잠시 덮어놓는 심정으로,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기다리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좌절의 시간도 있었다. 빈틈없이 단단한 글, 이미 기성작가의 분위기가 물씬한 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글 앞에서 나는 번번이 뒤로 나앉았다. 눈치 없이 다음 문장을 보채면서 깜빡 거리는 커서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깨달았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글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싱싱한 겨울 무처럼 생동감 있는 글을 뽑아 올리고 싶다. 앞으로 펼쳐질 2학기 수업은 잘게 썬 무채에 양념을 가미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밍밍하고 심심한 글에 맛을 입히는 과정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