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데

12강 숙제 - 소설 기초반 변덕쟁이 수강생 이야기

by 하빛선

나는 오랫동안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이 짧은 편이다. 물론 인내심이 부족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뭐든지 길게 하는 걸 힘들어한다. 그래서 긴 소설보다는 수필을, 수필보다는 시에 더 마음이 갔다. 짧은 문장 안에 깊은 의미를 넣을 수 있으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런데 소설이라니, 내가 어떻게 소설을 쓴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데 라는 생각에 수업은 덜컥 신청해 놓고 부담감으로 소화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가을학기에는 빡빡한 수업스케줄에 매달 행사까지 겹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던 터라 글 쓰는 일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설기초반 수업을 취소하고 말았다. 정윤작가님은 꼭 소설을 쓰지 않아도 수필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되니 부담 없이 들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직 소설까지 배울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소설기초반 그룹에서 나오긴 했지만, 호기심에 정윤작가님의 매거진을 구독하고 한 주, 두 주 수업을 쫓아가다 보니 불현듯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꼭 소설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시니 그냥 한번 시작이나 해 볼까?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다시 소설기초반에 들어가도 되겠냐고 작가님께 댓글을 남겼다. 변덕이 죽 끓듯 한 나를 다시 받아주신 정윤작가님께 죄송하면서도 감사하다.


12강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내 글쓰기 공부 파일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모든 강의 내용을 꼼꼼히 필사해 놓았다. 하지만 숙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 놓고는 늘 시작도 못하고 딴짓만 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내 책상처럼 내 머릿속도 헝클어져있었다.


결국 모든 숙제를 다 해내지는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 숙제를 제출하는 게으른 학생이었다. 내 브런치북 글 연재조차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숙제에 전념했다. 제대로 된 글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나둘씩 글을 완성해 나갔다.


감각적으로 표현한 글을 써야 하고, 사진 한 장, 영화의 한 장면을 감정으로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간결해야 했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독자를 홀려야 한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읽기부터 시작하라는 말은 나의 게으름에 살짝 양심이 찔렸고, 계절을 표현하기에 나는 학교와 집 이외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집순이였기에 애매했다. 여행도 뜨문뜨문 출장이나 가야 집을 떠나는 나로서는 모든 과제가 도전이었고, 싸움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어떤 구조로 써야 할까. 어떤 사유를 끌어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한 주 한 주 나의 글쓰기는 소설과 닮아갔다.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인 장르였던가.


놀라운 성장을 하고 계신 다른 작가님들에 비해서는 아직 턱없이 모자라지만, 나 스스로 내 글이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클릭해 읽어보다가, 눈에 보이는 부족함들 때문에 괜히 머리만 긁적인다.


글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건의 정보나 내 감정만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닌데, 나는 의욕만 앞섰었던 것 같다. 우리 삶의 공통분모를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보여주는 것, 그 은밀한 작업 속에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글인데 여태까지 나는 뭘 해 왔던가.


정윤작가님과 함께 하는 12주동안의 길고도 짧은 여정은 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글 속에 감추어진 깊은 성찰과 사유를 끌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짧은 걸 좋아하니까 짧은 단편소설 정도는 써봐야겠지? 새해에는 나의 글에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까 살짝 기대되는 연말이다.


지금까지 매 글마다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평을 남겨주시고 부족한 글들에 용기를 부어주신 정윤작가님과 함께 글을 쓰며 응원했던 작가님들의 합평과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 소설 실전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