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님과 글쓰기 수업, 1학기 마지막 강의
나는 이 강의의 지각생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더니,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글을 쓰는 전반적인 방법을 좀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고 3강 즈음 들어가 1강부터 숙제를 따라잡았다. 마음먹고 나서는 바로 점심을 삼각 김밥으로 때우며 1시간 꼬박 1강 숙제 글을 썼다. 그렇게 앉아 쭉 글을 써본 것은 학창 시절의 리포트, 직장 생활에서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외에 거의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그것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경험으로 일단 쓰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를 익힐 수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다르다고 읽어서, 나는 '읽는 사람'의 쪽에 서있지 '쓰는 사람'에 속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브런치에서 시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강의를 통해 상황을 보여주고, 감각을 자극하고, 비유하여 쓰는 등을 배우면서 글이 점점 설명보다는 상상되는 글에 가까워지는 감각을 배웠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직장 생활에서의 쓰기는 감정을 배제한 차갑고 설명하는 글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감각 자체가 땅이 흔들리는 듯 어지러운 감각을 선사했다. 지진이 난 듯 글쓰기의 방식이 흔들리면서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이전과 같은 소개의 글에도 배운 여러 가지 방식을 녹여 이전보다는 풍성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11강까지의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되고 쓰면서 즐거웠지만, 내게 가장 힘들었고, 기억에 남는 글쓰기 주제는 '엄마'다. 주제도 얼마나 잘 정해주시는지, 그 주제를 보자마자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브런치에서 되도록 나를 드러내지 않는 기사형이나 소개형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랬지만, 아무리 틀어막아도 새어나가는 소문처럼 살아온 이력은 내 글 여기저기에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날 것의 글을 쓸 줄은 몰랐다. 날 것이므로 싱싱했고, 그 싱싱한 감정은 글 쓰는 주체인 나를 끌고 들어가는 듯도 했다. 마치 대어가 물었지만 끌어올리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무게감은 나를 며칠 동안이나 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도 눈물이 나는 바람에 나는 화장실에서 오래 못 나오기도 했다. 나이 40살에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이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런 경험이 글쓰기에서 비롯되다니 그 또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글쓰기는 같은 재료라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것처럼, 같은 주제를 주어도 숙제를 하는 많은 작가님들의 글은 다채로웠다. 쓰면서도 배웠지만 읽으면서도 배우고, 정윤 작가님께서 주시는 피드백을 읽으면서도 배웠다. 지금까지의 강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2학기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라는 장르가 내게 맞는 것인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망설이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왜 소설 쓰기를 배우느냐고 물으면, 나는 어떤 것이든 끝까지 배우면 모두 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이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글'을 쓴다는 것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무엇이든 배우면 다 '글'쓰는 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2학기의 숙제들 앞에서 더 많이 방황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또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이다. 같이 하는 소중한 작가님들과 듬직하고 단단한 정윤 작가님이 계시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