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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생긴 일

7주 차 과제 - 시선을 끄는 도입부 쓰기

by 나야

정윤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 7주 차 과제입니다.


달리던 버스가 고속도로 위에 멈춰 섰다. 깜빡 잠들었던 승객들은 벌써 도착했냐며 머리를 매만지다가, 바로 옆에서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급기야 기사님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출근시간 30분 , 통근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버스 중간쯤에 앉아있던 나는 목을 길게 빼고 앞을 쳐다봤다. 익숙한 뒷모습들이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창문 블라인드를 위로 슬쩍 걷어 올렸다. 보이는 거라곤 현재 우리가 고속도로 갓길 위에 서있다는 것.


순간 통로 건너편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근무하는 공간이 달라 말 한번 섞지 않았던 얼굴이지만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혹시 밖에 뭐가 보이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기사님이 올라오셨다. 시동을 걸자 꿀렁이던 버스가 기운을 차렸다. 뭔지 몰라도 급한 불은 꺼진 듯했다. 사람들은 의자 깊숙이 등을 붙이고 앉았다. 평소에는 출발과 동시에 한숨 자고 나면 회사 정문에 닿곤 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수면버스.


한데 오늘은 잠이 싹 달아났다. 기사님이 또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뭔가를 수리하는지, 챙챙챙 금속성 마찰음이 들려왔다.


입구에 걸린 전자시계가 8시 50분을 가리켰다. 이대로 가다간 지각 확정이었다. 더 큰 문제는 고속도로 위에서 정차가 거듭되고 있다는 사실.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옆 차선의 차들은 방금 활시위에서 당겨진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전벨트에 손이 갔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통근버스는 기사님이 소유한 지입차라고 했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운행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진작에 은퇴하고도 남았을 낡은 차량이라고.


이 골골대는 차가 통근버스라니 말이 됩니까?


위에서 단가를 후려쳤겠지, 돈만 많이 줬어봐, 좋은 차는 쌔고 쌨는데.


직원들 안전은 누가 책임지냐구요. 당장 총무과에 말을 하든가 해야지.


내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후로도 버스는 한 번 더 갓길에서 거친 숨을 뱉으며 쉬어갔다. 그리고 출근시간을 10분 넘겨 목적지에 다다랐다. 모두가 말똥말똥하게 눈을 채였다. 그나마 무사히 도착한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내리는데 기사님이 입구에 서 계셨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내리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승객은 물론 회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 분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언제나 차에 타면 푹 자라고 조명도 꺼주시고 쓰레기도 손수 치워주시던 분이었다. 냉난방 온도를 맞추는 데도 여럿의 의견을 구하셨던 분.


사전에 차량 점검이 부족했던 건 당연히 잘못이지만 모든 책임이 그에게만 있을까. 평생 운전대를 잡았다는 그의 삶은 낡은 버스보다 주행거리가 더 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은 듯했다. 인사할 때 눈을 마주치기 민망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의 뒷머리에 수북한 흰머리가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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