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님과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 도입부 새로 쓰기
제가 쓴 소설의 도입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도입부를 배운 대로 수정해 봅니다.
[내가 쓴 소설]
https://brunch.co.kr/@snowsorrow/506
[수정 전 도입부]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러니 사냥꾼은 가을에 사냥을 많이 해놓아야 하는데, 이 시기의 달은 일몰 후 바로 달이 떠서 사냥에 용이했다. 게다가 밝았다. 그래서 추수 이후 뜨는 보름달의 이름은 헌터스 문(Hunter's moon), 사냥 달이다.
아, 힘들다. 혼잣말을 하며 마루에 앉아 달을 본다. 회사에서 밀려드는 일을 끝내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 입맛이 없어 지하철을 타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잘 다려 입은 흰 셔츠가 구겨져있고, 일하느라 나도 모르게 소매를 접어놓았다. 마루에 앉아 지친 시선이 스르륵 올라가 하늘을 본다. 보름달이 떠있다. 하얀 달을 보니 하얀 도자기에 담겨있는 엄마가 담가주신 국화주가 떠올랐다. 안주도 없이 국화주를 꺼내온다. 쪼르륵. 국화주가 하얀 잔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담근 술을 나누어 주신다. 조금만 마시라는 잔소리와 함께. 국화향이 가을밤 서늘한 공기로 번지고, 빈속에 마신 술은 몸속으로 신속하게 퍼진다. 손으로 마루를 짚고 하늘에 보름달을 올려본다.
아, 힘들다고
혼잣말이 툭 떨어진다. 고단한 서울 살이다. 달을 보며 말한다. 달은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저 달 내 옆에 두고 살까?
엉뚱하게도 저 달을 사냥하는 상상을 한다.
[수정 후 도입부]
사슴을 쫓는 사냥꾼의 등 뒤로 노을이 진다. 사슴이 도망간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길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이동하는 발 밑에서 마른 낙엽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사슴이 간 방향을 보는 사냥꾼의 눈이 갈 곳을 잃는다. 사슴이 어둠으로 사라졌다. 숨소리가 커진 채, 잠시 숨을 돌리며 사슴의 흔적을 찾는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그의 눈앞이 밝아진다. 찾았다, 속으로 크게 외치며 다시 사슴을 쫓는다. 이 계절의 보름달은 쫓기는 것들을 숨기지 않는 냉정한 사냥꾼의 눈을 닮았다.
나는 쫓기는 사슴처럼 회사에서 밀려드는 일을 끝내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 입맛이 없어 지하철을 타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느리고 맥 빠진 발걸음 아래로 그림자가 늘어져 같이 움직인다. 다려 입은 흰 셔츠가 구겨져있고, 일하느라 나도 모르게 소매를 접어놓았다. 옥탑방으로 오르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도착한 옥탑방 마루에 누워버린다. 이 옥탑방 마루가 좋아서 이사 왔다. 이 마루로 나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햇볕에 책도 보고, 바람을 쐬었다. 하늘을 보는 것이, 이 마루에서 이웃들이 만드는 불빛을 통해 사는 모습을 내려보는 것이 사소한 낙이 되었다.
지친 시선이 스르륵 올라가 하늘을 본다. 보름달이 떠있다. 멍하니 하얀 달을 본다. 하얀 달을 보니 하얀 도자기에 담겨있는 엄마가 담가주신 국화주가 떠올랐다. 힘든 하루였으니, 한 잔 해야지. 언제 늘어졌나는 듯 퉁겨져 일어나 안주도 없이 국화주를 꺼내온다. 오늘처럼 지치는 날엔 마루에서 술도 마신다. 쪼르륵. 국화주가 하얀 잔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담근 술을 나누어 주신다. 조금만 마시라는 잔소리와 함께. 국화향이 가을밤 서늘한 공기로 번지고, 빈속에 마신 술은 몸속으로 신속하게 퍼진다. 손으로 마루를 짚고 하늘에 보름달을 올려본다. 술기운이 몸을 뜨겁게 했으나 공기는 서늘했다.
힘들다, 혼잣말이 툭 떨어진다. 고단한 서울 살이다. 달을 보며 말한다. 달은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저 달 내 옆에 두고 살까? 달을 사냥하는 상상을 한다.
[수정 후 후반부]
달 사냥, 어떻게 하지? 월하독작처럼 달을 술 속에 담아 사냥할까? 혼자 빙그레 웃으며 알싸한 국화주를 한 모금 마신다. 달이 노른자처럼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거울과 사진을 연달아 떠올려본다. 빙긋이 웃는다. 달이라고 써놓고 손으로 잡을까 하는 유치한 상상도 이어진다. 눈앞의 달을 두 손을 뻗어 잡아본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부끄러워져 손을 내리려는 순간, 달과 눈이 마주친다.
달을 보는 내가 마취된 것처럼 잠깐 어지럽다고 느낀다.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단풍이 짙게 든 나무로 둘러싸인 어느 연못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달을 잡으려는 내 손길에 화답하듯 달빛이 내 손으로 내려앉는다. 손에 한기가 스쳤다. 깨끗하게 차가운 공기다.
"일 년에 하루 바로 오늘, 사냥을 한다."
달이 말한다. 아니, 달의 음성이 머릿속으로 들렸다. 달의 음성은 나직하게 낮은 남성의 목소리를 닮아있었다. 어느 유명한 발라드 가수(성시경)와 닮은 목소리였다.
"내가 너를 잡아왔어."
라고 음성이 이어졌다. 나는 눈을 깜박인다. 달은 말하고 있고 나는 듣고 있다. 저 하얀 달이 내게 또 말한다.
"일 년에 하루, 11월 보름에 나는 인간을 잡을 수 있어, 잡아서 잠깐 이야기하는 것이 끝이지. 다만, 나와 눈이 마주쳐야만 가능해. 네가 내 눈을 보았지. 그래서 잡았어."
설명하는 달에게 나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혹시 내가 투덜거리는 것을 듣는 게 힘들었어?"
짧게 웃은 뒤 한밤의 라디오 디제이가 멘트를 읊듯, 달의 음성이 들린다.
"나는 낮의 일을 모르니, 밤에 듣는 낮의 이야기가 좋았어. 나에게 힘들다는 인간보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인간을 비추는 게 힘들지. 나를 보지 않는 인간들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더라고. 나를 보며 소원을 빌거나 하소연하는 인간은 내가 고개를 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어. 소원을 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고개를 들 수 있는 힘은 현실을 마주 보고 헤쳐나가는 힘이거든. 그러니 나를 보고 투덜거리는 너에게 나는 고개 드는 힘을 줄 수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다시 마루에 있다. 달을 본다.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달은 또 누구를 잡으러 간 걸까? 나는 달을 보며 갸웃하다가, 국화주를 닫고 방으로 향한다. 현관문을 닫으며 나는 내일 입을 옷과 해야 할 일들을 가만히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