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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가 깨운 새벽

7주 차~도입부 다시 쓰기

by 박영선


<수선하는 밤>은 사정이 있어 삭제하였습니다. 라이킷과 귀중한 댓글 주신 작가님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나야 @소위 김하진 @빛나는 @별의서랍 @숨결biroso나 @한라산이그리는풍경

@설애 @정윤 작가님들의 댓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께요.~~ 대신 <빈자리가 깨운 새벽>을 올립니다.



새벽보다 먼저 깨어난 건 내 눈이 아니라 어젯밤 그녀가 남기고 간 빈자리였다.
그 빈자리가 어둠을 먼저 깨웠고, 나는 그 틈으로 흘러들어온 새벽 공기를 멍하니 맞았다.


며칠 전, 오래 함께해 온 모임에서 그녀는 조용히 떠났다. 그 소식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실밥 하나가 툭 하고 풀려버렸다.


그녀가 떠난 데에는 이유가 하나만 있지 않았다. 오래된 관계 속에서만 생기는 미묘한 감정들, 사소한 말의 결이 어긋나며 쌓여온 작은 금, 그리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던 그녀의 개인적 피로들까지. 그 모든 것이 천천히 겹쳐져 어느 날 문득, 그녀 마음의 무게가 모임 바깥을 향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판엔 그저 붙잡고만 싶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안 될까.’ 여러 번 말을 건넸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봄의 기운을 품은 바람이었지만 마음은 계절과 달리 더 서늘해졌다. 그 차가운 틈 사이로 관계에 대한 한 생각이 길게 흘러들어왔다.


우리는 삶이라는 길 위에서 무수히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나보낸다. 그 반복 속에서 인연은 마치 우연과 선택이 얽힌 긴 실타래 같다. 만남은 우연의 자락을 잡아 오지만, 머무름과 끝맺음은 늘 선택의 문제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함께했던 시간보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그 뒷모습이 더 깊은 그림자로 남았다. 아마도 우리는 남아 있는 사람보다
먼저 떠난 사람의 결정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관계는 언제나 균형을 잃는다. 어떤 날은 내가 더 기대고, 어떤 날은 누군가가 내게 더 의지한다. 그 미세한 기울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양을 천천히 배우게 된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는 존재다. 따뜻한 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부드러워지고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어느새 작아지고 만다. 그래서 인연은 종종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표정’을 비춰준다. 어떤 거울은 너무 왜곡되어 내가 나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 혼란조차 어쩌면 성장의 한 과정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인연은 운명일까요, 선택일까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처음은 운명일지 몰라도,
머무르고 떠나는 일은 언제나 선택이에요.”


어떤 인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아무리 붙잡아도 흩어진다.
그 차이는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힘, 침묵을 함께 버티는 여유, 그리고 내려놓을 용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나는 사람을 쉽게 믿는다. 그래서 더 자주 상처받고, 더 오래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그 상처는 누군가를 정성으로 대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흔적을 서둘러 지우고 싶지 않다. 지나온 인연을 돌아보면 영원도, 절대도 없었다. 다만 같은 시간을 바라봐준 순간들만 희미한 빛을 남기며 오래 남았다.


관계는 결국 시간이다. 함께 건너는 시간, 기다려주는 시간,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 우리는 말보다 시간 속에서 더 진실해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이미 멀어진 사람, 어딘가에서 나에게 오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 모두가 나를 이루는 조각이고, 나는 그 조각들 덕분에 조금씩, 더 나다운 모양으로 빚어지고 있다.


인연은 단단한 실체가 아니다. 흔들리고 변화하며, 때로는 나를 시험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위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벽, 내 안에서 다시 올라오는 질문을 품었다.


“나는 누구의 시선 속에서, 어떤 내가 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니 문득 알 수 있었다. 흩어지고 스며들고 떠나간 모든 인연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여전히 조금씩 나를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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