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보름달 이름은 헌터스 문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러니 사냥꾼은 가을에 사냥을 많이 해놓아야 하는데, 이 시기의 달은 일몰 후 바로 달이 떠서 사냥에 용이했다. 게다가 밝았다. 그래서 추수 이후 뜨는 보름달의 이름은 헌터스 문(Hunter's moon), 사냥 달이다.
아, 힘들다.
혼잣말을 하며 마루에 앉아 달을 본다. 회사에서 밀려드는 일을 끝내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 입맛이 없어 지하철을 타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잘 다려 입은 흰 셔츠가 구겨져있고, 일하느라 나도 모르게 소매를 접어놓았다. 마루에 앉아 지친 시선이 스르륵 올라가 하늘을 본다. 보름달이 떠있다. 하얀 달을 보니 하얀 도자기에 담겨있는 엄마가 담가주신 국화주가 떠올랐다. 안주도 없이 국화주를 꺼내온다.
쪼르륵.
국화주가 하얀 잔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담근 술을 나누어 주신다. 조금만 마시라는 잔소리와 함께. 국화향이 가을밤 서늘한 공기로 번지고, 빈속에 마신 술은 몸속으로 신속하게 퍼진다. 손으로 마루를 짚고 하늘에 보름달을 올려본다.
달은, 둥글고 밝다.
이 옥탑방에 마루가 있어서 좋아서 선택했다. 이 마루로 나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햇볕에 책도 보고, 바람을 쐬었다. 오늘처럼 지치는 날엔 술도 마신다. 하늘을 보는 것이, 이 마루에서 이웃들이 만드는 불빛을 통해 사는 모습을 내려보는 것이 사소한 낙이 되었다.
아, 힘들다고
혼잣말이 툭 떨어진다. 고단한 서울 살이다. 달을 보며 말한다. 달은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저 달 내 옆에 두고 살까?
엉뚱하게도 저 달을 사냥하는 상상을 한다.
달 사냥, 어떻게 하지?
월하독작, 달과 술을 마시는 시였지?
그럼 달을 술 속에 담아 사냥할까?
지금 국화주 속의 달을 마시니 달이 노른자처럼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기분일 뿐, 달은 하늘에 있다.
아, 거울에 달을 비추어 잡을까?
술에 달을 담아 마시기나 하지, 거울에 담는 건 잡는 건 아니지.
사진은 거울보다 낫나?
찍어 놓으면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니, 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기를 처음 본 사람들이 영혼이 잡힌다고 한 것처럼 원시적이다.
달이라고 써놓고 손으로 잡을까?
아, 유치하다.
눈앞의 달을 두 손을 뻗어 잡아본다.
하하
웃다가 웃는 소리가 저절로 작아진다.
진짜 잡으려고 하다니, 나 취했나?
눈을 깜박이다,
달과
눈이
나는 단풍이 짙게 든 나무로 둘러싸인 어느 연못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달을 잡으려는 내 손길에 화답하듯 달빛이 내 손으로 내려앉는다. 손에 한기가 스쳤다. 깨끗하게 차가운 공기다.
일 년에 하루, 바로 오늘 달도 사냥을 한다고 달이 말한다.
내가 너를 잡아왔어.
달에 잡혔다고?
꿈을 꾸나 싶어 눈을 깜박인다. 달은 말하고 있고 나는 듣고 있다. 저 하얀 달이 내게 또 말한다.
일 년에 하루 사냥 달에
나는 인간을 잡을 수 있어,
잡아서 잠깐 이야기하는 것이 끝이지.
나와 눈이 마주쳐야만 가능해.
네가 내 눈을 보았지.
달에게 묻는다.
혹시 내가 투덜거리는 것을 듣는 게 힘들었어?
나는 낮의 일을 모르니,
밤에 듣는 낮의 이야기가 좋았어.
나에게 힘들다는 인간보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인간을 비추는 게 힘들지.
나를 보지 않는 인간들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더라고.
나를 보며 소원을 빌거나
하소연하는 인간은
내가 고개를 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어.
소원을 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고개를 들 수 있는 힘은
현실을 마주 보고 헤쳐나가는 힘이거든.
그러니 나를 보고 투덜거리는 너에게
나는 고개 드는 힘을 줄 수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다시 마루에 있다.
달을 본다.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달은 또 누구를 잡으러 간 걸까? 나는 달을 보다가, 국화주를 닫고 방으로 향한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
현관문을 닫으며 나는 내일을 열고 있다.
11월 5일, 슈퍼 사냥 달이 뜬다.
눈 마주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