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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달

어깨 위로 내려앉은 달빛

by 해이




가을밤의 공기는 냇물처럼 맑지만, 그 맑음 속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가 있었다. 달빛은 하늘의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 나온다. 한동안 바라본 그 빛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듯 느껴졌다.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존재한다. 고대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천체를 구성하고 있는 행성들이 움직이며 거대한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우주의 음악이라고 불렀다. 그 음들이 모여 조화의 질서를 이루고, 그 조화 속에서 세계는 유지된다고 믿었다.


그의 말이 단지 수학자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의 가설을 사랑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나 또한 그 거대한 화음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달은 그 음들 중 가장 가까이에서 들리는 하나일지도 모른다.


달빛은 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차가워 보이는 강렬함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나를 향해 내민 그 감촉은 낯설었지만 알 수 없는 이끌림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손길같이 느껴졌다. 나는 삶이 흔들릴 때마다 그 빛을 찾았다. 세상과의 조율이 어긋날 때면 달빛은 언제나 같은 리듬으로 나를 비췄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결코 침묵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때 나는 모든 것을 불협화음이라 여겼다. 사람의 말도, 내 마음의 소리도, 세상의 불합리한 구조도, 그 안에서 발생하는 소음까지도 모두 뒤섞여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쉽게 흔들렸고, 내 안에 연결되어 있는 현은 작은 자극에도 끊어져버리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달빛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흔들리던 호흡은 정리가 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의 어긋나버린 부속품들을 다시 연결해서 맞춰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타고라스가 말한 '조화'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강요한 악보가 아니라, 내 안의 파열음이 고른 리듬을 찾는 일.


나는 달을 뮤즈라 부른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나 표면적인 드러냄이 아니라 실제로 나를 다시 연주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달빛이 스치면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잃었던 삶의 방향을 다시 찾게 된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빛의 형태,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천체의 음악이자 달빛일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지만 남아 있는 진동. 그 진동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그 안의 조화를 야기시키고, 질서를 회복시킨다.


10월 30일. 오늘 밤의 달은 유난히 맑다.

바람이 멈춘 하늘에서 빛은 더욱 또렷하다.

나는 그 아래에 서서 지구가 돌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달빛이 내 어깨에 닿고, 내 안의 깊은 어둠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나는 그것을 '음'이라 부른다.

그건 피타고라스가 말한 우주의 음악이자,

내가 다시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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