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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렌치 Aug 22. 2023

죽음을 대하는 자세  

살구잼을 먹으며 

우리 외할머니는 올해 만으로 102세 생신을 맞이하셨다. 

100세가 넘으셨지만 정신도 온전하시고 큰 병마 없이 여태까지 건강하게 지내오셨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외할머니를 방문했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보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 난 이제 가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내 시어머니는 작년 초, 향년 65세에 돌아가셨다. 

내 남편과 사귀고 결혼을 한 지 12년 차가 되어가기에 시어머니를 알아간 시간도 그즈음 된다. 

우리 시어머니는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작별인사를 했을 때조차도 "나는 죽지 않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다.


죽음이란 다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약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시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셨던 살구잼을 꺼냈다. 

얼마 전 아침 식사에 그 살구잼을 꺼내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제는 이런 살구잼을 맛볼 수가 없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하면서도 달콤 새콤한 살구잼을 맛있게 먹었다. 

이러한 모순에 기분이 이상했다.


시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는 사랑만이 아니라 미움도 있었던 애증의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달콤하고 새콤한 살구잼을 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살아있기에 이 맛있는 살구잼을 먹을 수 있다.

이 맛있는 살구잼은 내 시어머니가 살아생전에 만들어주셨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맛있는 살구잼을 먹을 수 없다.

이 마지막 살구잼 통도 결국에는 비워지리라. 


하지만

시어머니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죽음은 허다한 허물을 덮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별 앞에서는 모질었던 과거도 용서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기억, 추억, 감정들은 이생에 남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살구잼이더라도, 결국엔 그걸 맛있게 먹으면서. 

내 안에 살아있는 또 다른 삶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나는 마지막 남은 살구잼을 다 먹으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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