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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렌치 Jul 09. 2023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이가 얼마 전부터 집에만 오면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슨 춤을 추는 거냐고 물으니 학교 축제 재롱잔치 때 출 춤을 추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부모인 우리는 다니엘이 처음으로 재롱잔치 무대에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는 만 3세부터 만 10세에 이르기까지 학교 - 에꼴(école)- 의 모든 학급 학생들이 일 년에 한 번 한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학교 축제 때 각 학년 별로 혹은 학급 별로 공연을 준비한다.


그렇게 학교 축제가 시작되고 모두가 기다리던 시간!

남편과 나는 들떠서 아이의 첫 공연을 담기 위해 수시로 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노래가 시작되고 아이의 반 아이들(만 3-4살 petite section 학급)이 하나 둘 무대에 올라가는데 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무대 위에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무대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아기자기 예쁜 춤을 추고 다들 각자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바로 무대에 올라가지 않고 무대 아래 계단 옆에 뚱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손주의 첫 공연이라 하여 빠삐(프랑스 말로 할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까지 모셔왔건만!

우리는 도대체 다니엘이 왜 무대에 오르지 않았나 어리둥절하고 조금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그 공연을 주관하고 아이를 이끄는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도 그냥 내 아이를 그렇게 내버려 두셨다.

하지만 당장 아이에게 갈 수 없었던 것이 모든 반 아이들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다른 학부모들과 자리에 앉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약 1시간 반동안 (만 3세 반부터 CM2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까지 모든 학년이 공연을 했기에 시간이 소요되었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모든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 대기실로 돌아가서 반별로 선생님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학부모들이 먼저 자기 자녀를 찾아가려고 우왕좌왕하는 게 아니라 한 줄로 서서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는 질서 정연한 모습에 새삼 놀랐다.

드디어 우리 아이를 찾았고 남편과 나는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다니엘은 왜 무대에 오르지 않았나요?
(나는 속으로 내심 선생님께서 억지로라도 아이를 무대에 데리고 올라가셨으면 하고 바라었었다)

"친구들과 공연하고 싶느냐고 물으니 다니엘이 하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억지로 시키지 않았어요. 어차피 앞으로 할 날이 많은데 처음에 억지로 시키게 되면 나중에 더 하기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같이 준비했던 과정에서 함께 참여했고 앞으로 다른 공연에서 무대에 서야 할 기회가 많을 테니 급할 거 없어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그동안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참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4살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 학교에 있는 동안 공연할 날이 많이 때문에 억지로 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오늘을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공연을 할 때 꼭 한 두 명씩 우는 아이들을 보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여기서는 그런 게 없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먼저 아이가 무대에 억지로 서서 학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것보다 아이가 무대에 서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을 더 존중해 주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 4살 아이도 정말 한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공연할 날이 많았다는 것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앞으로 만 10세까지 학교에 있는 동안 매년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유치원 때까지만 아이들이 재롱잔치를 하지만 여기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학급 아이들과 같이 춤추고 노래를 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떠나며 다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짧은 연극을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 학교의 10세 아이들도 그동안 정든 학교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공연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조금 울컥했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여기 아이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 아이도 어느덧 저런 나이가 되겠지 저렇게 크겠지 라는 생각이 겹쳐서였다.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비록 아이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학부모인 우리는 더 많은 걸 깨우친 무대였다.

그래도 내년 공연에는 아이가 무대에 서주기를 바라는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 엄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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