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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렌치 Jul 03. 2023

먹는 거에 진지한 사람들

프랑스 교사 이야기 [1]


학생들에게 한국의 음식문화를 설명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사치레로 "밥 먹었어요?"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어요."

감사 인사로 "꼭 밥 한 번 살게."

아플 때 "밥 잘 챙겨 먹어." 등등


여기에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어에는 밥과 관련된 표현이 많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밥'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프랑스인에게 '빵'은 한국인의 '밥'만큼 중요하다.


프랑스어 중에 친구를 칭하는 표현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copain/코빵/'의 어원은 co- (함께) -pain (빵), 함께 빵을 나누는 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 이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빵이 없으면 케이크(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발언은 그만큼 프랑스인들의 삶에 '빵'은 먹는 것, 즉 생존하는 것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스며들고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다 보니 이들도 만만치 않게 먹는 거에 진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한 번은 밥 한 끼를 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상대방을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여 빵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한다.


이곳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문화 중 하나는 누군가와 한 번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모든 코스를 다 끝낼 때까지 기본 3-4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성탄절 가족 명절이나 결혼 행사와 같은 때는 반나절을 식사를 하며 보낸다.


그러면 무슨 식사를 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시간은 식사 코스 사이사이에 생기는 시간까지 다 포함한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식탁 위에는 별 얘기가 다 오고 간다. 날씨부터 시작해서 건강, 교육, 정치, 환경,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사람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나의 프랑스어 구사 능력이 농담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실력이었을 때는 이 식사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어떻게 이렇게 끊임없이 할 얘기가 있는 걸까? 누군가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도 큰 부담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식사시간이 내가 가장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프랑스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의 식사시간은 먹는 것과 동시에 가족, 친구, 혹은 동료들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다른 이의 말을 듣고, 모두의 삶을 나누는 시간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가정의 식탁에서부터 시작한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롭게 자기의 의견과 생각을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닐까?


음식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하기에 어느 문화든지 대부분 먹는 거에 진지하다.


그래서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른 문화를 가진 상대방과 먹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함께 공유한다면 더 유쾌하고 즐거운 교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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