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갑질 : 잃어버린 몰염치

by 김기황

일어나서는 안 되는 짓 ‘갑질’

대학과 대학. 같은 글자이지만 엄청나게 다르게 받아 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자는 2,000여 년 전의 의미이며, 후자는 지금의 의미이다. 약 1,000여 자의 글자로 만들어진 대학과 아마도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의 넓은 면적을 가진 대학을 비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됨에 분기탱천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면 황당해하거나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큰 가르침을 열었던 선현들의 선한 마음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큰 것이 힘이 있다는 엇박자를 내는 사람들만 남았는지를 성찰도 아닌 반성부터 해야 하는 이 시대의 풍경은 안타까움을 넘어 통탄스럽기까지 하다. 기다리던 광야에 목 놓아 우는 초인은 나타나지 않았건만 초인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사람들만 넘쳐나는 세상이다. 목 놓아 울지 못하는 초인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고 싶은 세대에게는 참으로 허망한 일일 것이다.

대학 총장에 대하여 사회가 부여한 가치는 크고 넓은 것이지 힘 있고 높은 것이 아니다. <대학(大學)>에서 ‘大’(크다)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떳떳이 행할 수 있는 도리를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대학 총장은 개인적인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들보다는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을 품은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자리이다. 그런데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을 품은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거북해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한다. 개인적인 성취는 과정을 쌓은 결과로 나타나는 데, 결과를 쌓은 개인적 성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에는 엇박자가 난무한다. 큰 것이 힘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해서인지 아니면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명분을 단단하게 해 주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쉽지 않아서였을까? 좁은 영역으로 눈길을 돌린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 총장이 사회적 지위에서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권위에 대한 존중을 내외부에서 약화시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부적으로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권위에 대한 존중보다는 오래된 옷감에 떨어져서 색깔이 바래졌음에도 오염이 지워지지 않는 권위주의에 전염된 사람들에 대한 소시민들의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유사한 세태가 현대인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도 벌어지고 있는데 상업적 자본주의의 폐해라는 자정의 목소리도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갑질’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한 채로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 이 단어에는 ‘저항하기 곤란한 힘’을 인정함과 동시에 ‘떳떳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소시민들의 안타까운 염원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 저항은 하고 싶으나 현실의 조건을 외면할 수는 없는 딜레마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모든 사람이 떳떳이 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감시체계를 정밀하게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공식적인 감시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비공식적인 감시의 역할은 공식적인 감시보다도 어쩌면 더 넓게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갑질’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감시하는 방법은 법이다. 대부분의 ‘갑질’이라는 행태는 본질적으로 금전적인 우위에서 나온다. 어떤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의 공식적인 감시망인 법은 금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나 법은 공평하다는 공허한 외침은 힘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금전적 우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때로는 법은 완벽하지 않다는 변명까지 늘어놓고 있다. 법이 완벽하다고 인정하는 사회는 없다.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러한 예외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법을 세우고 집행하며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외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어렵다고 해서 변명거리로 전락시키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이러한 것이 공식적인 감시망이 가진 역할의 한계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선을 비공식적인 감시망으로 돌려보아야 한다.

비공식적인 감시망의 다양한 시선은 한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힘이 있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급격히 퍼진 것은 공식적인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공식적인 감시망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갑질’이라는 악행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가 작은 이득이라도 취하면 그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부러워하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 같다. ‘갑질’이라는 단어의 포장을 벗겨내지 않는 한 이들의 날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우리가 ‘갑질’이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그 뜻은 떳떳지 못한 행위임을 인식하는 노력은 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공식적인 감시망에서는 ‘갑질’이라고 쓰고 ‘양아치질’로 생각한다.

‘갑질’에 대한 맹자의 대답, 역성혁명

갑질의 행실을 약 2,000여 년 전으로 가지고 간다면 어떤 표현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시대 상황은 지금보다도 더 심한 상황일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신분이 정해져 있고 신분의 이동은 극히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갑질’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아예 이런 단어가 발명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발전해 왔다. 현대의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고인 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을 2,000년 전으로 거슬려 올렸을 때 최악의 갑질은 왕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군신 관계가 엄격했던 사회에서 왕의 명령이나 행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다.

아성(亞聖)으로 추앙받는 맹자. 그는 공식적인 감시망 속에 있지 않고 비공식적인 감시망에 있었기에 탁월한 개인적 성취가 가능했을 것이다. 왕의 갑질에 대하여 언급하는 자체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임에도 그는 용기를 냈으며 기록상으로는 80여 세를 살았다. 공식적인 감시망인 벼슬길에 있지 않고 비공식적인 감시망인 재야의 학자였기에 가능한 성취라고 본다.

왕의 갑질에 대한 맹자의 저항 정신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사자성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 시대 역성혁명의 정신, 갑질은 없다 양아치질이 있을 뿐

갑질, 학폭은 부패한 행동들이다. 분명히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것이 비공식적인 사회감시망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갑질이라는 표현은 어떤 우위에 있는듯한 묘한 불쾌감을 주는 것 같고, 학폭이라는 표현은 점점 더 부모 뒤에 숨은 지질한 학생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표현인 것 같다.

오늘날 맹자가 살던 시대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자들의 횡포를 겪었으며 그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 희생을 치렀다. 이들의 희생을 기린다는 의미에서도 사회의 비공식적인 감시망은 더 촘촘하게 엮어야 할 것이며, 우리 세대보다도 더 현명할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비공식적인 감시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의 환경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위를 이용한 악질적인 인간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 행위는 공식적, 비공식적인 감시망과는 상관없이 행해지고 있으며,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만 모습을 바꿀 뿐이다. 현재까지 인류가 터득한 지혜로는 이러한 악질 행위들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하는 것 또한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를 위해 최대한 억제라도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또한 지혜일 것이다.

양아치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자리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 떳떳하지 못한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말은 굉장히 심한 모욕이라고 한다. 불한당(不汗黨), 무뢰한(無賴漢) 등의 한자 표현으로 꺼림칙한 사람들을 표현한 말들은 있었다. ‘패(牌) 거리’라는 표현은 한자와 우리말을 결합하여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한 표현이다. ‘깡패’라는 표현은 좀 더 강한 표현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표현으로 보이는데 강한 발음의 쌍기역이 사용되었다. 아마도 이 표현은 영어가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표현으로 보이는데 ‘gang’이라는 표현과 ‘패거리’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영어의 뜻과 패거리의 뜻은 거의 같으며 그들이 하는 행위를 비하하기 위하여 영어를 강하게 발음하고 ‘패거리’에서 ‘패’ 자 만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뜻이 중복된 단어이지만 떳떳하지 못한 일에 대한 비난임을 강조하기 위한 민중의 멸시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깡패라고 비난받는 사람들도 입에 거품을 문다는 양아치라는 표현은 왜 나왔을까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1961년에 초판 된 이희승의 국어사전으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1982년의 수정 증보판이다. 양아치라는 단어는 없다. 아마도 이 단어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들어와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습관이나 관습의 차이를 오해한 우리의 감정의 표출이 아닐까 한다. 양아치라는 표현도 깡패와 비슷한 의도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에 우리의 발전 수준을 감안해 볼 때 눈에 뜨이는 외국인들은 상당히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양아치라는 그들은 외국인과 구별되는 존재이고 자신들과는 구분되는 우리 민중들에게 그들의 습관과 관습을 강요하였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데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그들이 우리 민중들의 눈에는 이쁘게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밉게 보이는 표현이 붙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마도 서양 외국인을 통칭하는 한자인 ‘양(洋)’을 사용하고 뒤에는 벼슬‘아치’, 동냥‘아치’, 장사‘아치’ 등에 사용되는 붙임 말을 붙인 것 같다. 이 표현은 우리가 외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만들어낸 단어이니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떳떳한 일상을 곤란하게 하는 행위에 저항하고자 했던 민중들의 생각마저도 마비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양(恙) 아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중국의 자문화 우월의식은 더 심했던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민족을 ‘오랑캐’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것도 타민족 모두를 통칭하는 것이 아닌 개별적으로 타민족을 지칭하는 문자를 만든 것이다. 타민족들이 그런 한자들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 그러한 논리라면 우리 민족의 입장에 서 본다면 타민족들이 모두 ‘오랑캐’가 되니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글자를 만든 셈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은 단지 지역을 구분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냈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다른 지역보다는 우월하다는 그 알량함으로 ‘오랑캐’라고 해석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랑캐’의 범주에 들지 않으려는 그 알량함이 ‘오랑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아치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행위에 외국 사람들을 개입시키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아치’에서 ‘양’은 서양 사람, 타민족,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깨끗이 지워내야 한다. 사회의 비공식적인 감시망에서 사용됨으로써 비난과 멸시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양’이라는 글자를 ‘진드기 유충’을 뜻하기도 하는 양‘(恙)’자로 대체해 볼 것을 제안한다. 소위 ‘갑질’이라고 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진드기의 유충이 하는 짓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자신을 위해서 타인들의 노고를 훔치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갑질’이라고 쓰고 ‘진드기 유충의 행태’라고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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