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의 리더

내삶의 리더

by 김기황

그때까지는 몰랐다. 삶이란 단어에 무게가 실린다는 느낌을. 불혹이란 단어가 나에게는 가혹(佳惑)이었다. 여행이 뿌리가 송두리째 뜯기는 경험을 되살리는 시각을 접했을 때 불혹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가혹(苛酷)이었다. 나중을 기약하며 떠난 여행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순례길에서 얻은 경험으로 발길을 돌린 원효의 일화는 부럽기만 했다. 자신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에서 사전(辭典)과 사전(事前)이 혼동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상의 땀과 눈물을 닦았던 수많은 수건이 너풀거리고 있었다. 나의 흔적이 이미 말라버린 수건을 쥐어짜는 안간힘으로 버텨야 했다.

삶이라는 단어에 무게가 실리게 된 이유는 명확했다. 그때까지 흩어져 있었던 내삶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각성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내삶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져 준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참담했다. 쥐구멍에도 들어갈 수 없는 처참함이 몰려왔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었다. 천성을 살피고 세상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져야 했다. 생명체의 본능을 사람의 천성으로 다스려 나의 개성을 발휘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생각을 간곡하게 붙잡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삶이 여행으로 끝나지 않고 내삶이 순례길이 될 것이었다. 그때서야 흔들렸던 마흔이 매혹적인 불혹이 될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내가 내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더 다듬어야만 한다.

‘내삶의 리더’라는 표현이 진부하다고 하더라도 또는 내용이 피상적이라고 조소를 받더라도 더 이상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주인공이라고 하면 너무 의기양양해질 우려가 있고 주역이라고 하면 소중함이 사라지는 듯하다. ‘리더’라는 단어에는 흐름이 들어있고 주도를 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흡족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삶’이라는 표현을 띄어쓰기 규칙을 어기고 붙여서 쓴다. 띄어 쓰게 되면 그 사이로 또다시 흔들림이 비집고 들어와 고요를 흔들까 해서다. 흔들려서 가혹(苛酷)했던 마흔이 가혹(佳惑)한 불혹이 되어서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낭만적 표현이 ‘내삶의 리더’이다. 그래서 나에게 ‘내삶’의 붙여쓰기는 지질한 저항이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자기 존중의 원초적 본능이 있다. 모든 인간은 타고난 천성을 갖추고 있다. 이 둘의 조화를 드러내는 것이 개성이다. 이러한 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아름다움, 선함, 참됨을 추구함으로써 자신 삶의 질과 양을 증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내삶의 리더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한 번쯤은 자신이 느꼈던 감동으로 자신에 대한 개인의 성명서를 써보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의 흔들림이 내삶을 완전히 허물지는 못하며 내삶의 질과 양을 늘리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삶 속에서 분명히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며 지혜는 충실한 나의 일상이 주는 열매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각 부분의 신체를 합쳐 놓은 육신임을 안다. 또한 나의 내면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의 이성이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다움을 사랑하는 본성이 있음도 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의 총합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에서 겸손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제대로 건전하게 인식하면서 조화를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다움으로 충만한 내삶을 가꾸어 갈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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