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진·선·미: 존재를 위한 세 갈래 흐름

by 김기황

원효대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도 그 일을 겪은 때처럼 발길을 돌렸을까? 참으로 생뚱한 생각을 한다고 느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흐름’이라는 거대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펼쳐 드는 책마다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자는 자신의 연령대별 경험을 흐름으로 설명했다. 노자는 너무도 쉽게 물의 성질을 이용했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으로 흐름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너무도 굳혀져 버린 도(道)의 개념에도 흐름의 의미는 내포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道(도)의 첫 번째 뜻은 ‘길’로 새긴다. 길을 명사로만 본다면 고정된 실체만 보인다. 그러나 길의 본질에는 ‘흐름’이 내포되어 있다. 이때 이후로 ‘흐름’은 나의 사유를 이어가고 있다. 명사형의 사유보다는 동사형이나 형용사형의 사유가 시선을 넓게 확장하는 경험이 많아졌다. ‘나다움’을 고정된 명사형으로 대하지 않고 동사형으로 살피면 ‘흐름 속에 담겨있는 역설(Paradox)을 끊임없이 살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비워냄으로써(진) 세상을 가득 채우는(선) 역설은 인간을 나다움으로 흐르게 한다.

한 송이만으로도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장미는 피어나면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그 아름다움은 누가 평가하거나 꾸며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장미’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필연적 질서다. 그 피어남에는 진(眞)·선(善)·미(美)가 함께 숨 쉬고 있다. 진은 거짓이 없는 생명의 투명함으로, 선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순응으로, 미는 전체의 조화로 드러나는 질서로 존재한다. 인간 역시 이 세 가지의 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 간다. 따라서 진·선·미는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간이 ‘나다움’으로 서기 위한 존재의 세 갈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1. 진(眞) ―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투명한 사유

진은 고정된 앎의 근원이 아니다. 진은 ‘드러냄’이다. 무언가를 더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덧칠된 것을 걷어내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진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유의 흐름이 정화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리를 탐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새로운 사실을 획득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의 껍질을 벗기는 일에 가깝다. 인간은 스스로를 설명하려 할수록 자신의 내면은 감추고 외면을 드러내려고 한다. 자기 해명의 언어가 쌓일수록 본래의 투명함은 흐려진다. 따라서 ‘진실하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도덕적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가리는 층위를 하나씩 벗겨내는 용기다. 이는 마치 구름을 걷어내야 태양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태양은 늘 있었지만, 눈에는 구름이 보일 뿐이다. 노자는 이것을 가물가물(玄)하다고 하였다. 진을 향한 인간의 사유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감내하는 훈련이다. 그것은 고요한 자기 응시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응시는 단순히 내면을 바라보는 명상이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허위의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행위다. 장미가 다른 꽃을 흉내 내지 않듯, 인간 또한 자신이 아닌 것을 버릴 때 비로소 진에 가까워진다. 진은 완성된 진리가 아니라, 자기기만을 벗겨내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다.

번암 체 제공은 조선 후기 재상으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의 초상화에는 안쓰러운 부분이 있다. 영조와 정조의 절대 신임을 받았던 정승의 초상화인데 눈이 사시로 그려져 있다. 연로한 정승, 두 임금의 절대 신임만으로도 눈을 정상적으로 그린다고 하더라도 별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를 감내하였다. 임금의 신임과 후배들의 명망을 걷어냈다.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지 않음으로 자기기만을 벗겨내는 나다움을 초상화에 남겼다.

2. 선(善) ― 흐름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가는 행위


진이 사유의 고요한 뿌리라면, 선은 그 사유가 세상과 연결되는 흐름이다. 선은 도덕 교과서의 명제나 규범이 아니다. 선은 흐름을 쥐고 있는 감각이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는 말은 그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며,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모든 생명을 살린다. 그 흐름은 대립이나 억압을 넘어서는 관계의 질서다. 이 질서 속에서 선은 강요가 아니라 자연의 리듬으로 작동한다. 현대의 많은 선(善)은 ‘선행’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진정한 선은 행위 이전의 상태다. 그것은 단절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의지다. 사람과 사람, 나와 세계, 사유와 현실 사이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태도가 선이다. 그래서 선은 명사형의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동사형의 힘이 된다.

삶의 고통은 대개 흐름이 끊길 때 생기며 흔들림은 흐름이 어긋날 때 생긴다. 분노는 이해의 흐름을, 탐욕은 나눔의 흐름을, 공포는 관계의 흐름을 막거나 어긋나게 한다. 그 막힘과 어긋남을 인식하고 다시 흐르게 하려는 마음, 그 작은 움직임이 바로 선의 시작이다. 선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흐름의 재개를 위한 지극한 노력이다. 물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인간의 선 역시 그와 같다. 멈춤 속에서도 다시 흘러가려는 의지, 그것이 인간을 선(善) 하도록 만든다.

3. 미(美) ― 전체의 조화로 드러나는 존재의 향기

미는 진과 선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에 피어난다. 진이 사유의 투명함이라면, 선은 그 투명함이 세상 속에서 흐르는 실천이다. 이 둘이 하나로 이어질 때, 미는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드러남으로 나타난다. 많은 이들이 미를 감각적 완벽함이나 미적 대상의 소유로 이해하지만, 사실 미는 관계의 조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꽃잎의 곡선에만 있지 않다. 그 줄기와 잎, 뿌리와 흙, 그리고 햇빛과 바람까지 어우러진 전체의 질서가 바로 그 미의 근원이다. 인간의 미 또한 이와 같다. 진실한 사유가 선하는 행위로 이어질 때, 그 사람의 존재 전체에서 자연스러운 조화와 평형이 피어난다. 그것이 미다. 미는 결코 정지된 완성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질서이며, 매 순간 다시 만들어지는 균형이다. 진이 멈추면 사유는 닫히고, 선이 멈추면 관계는 끊긴다. 그러면 미도 사라진다. 따라서 미는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의 형식이다. 그 흐름이 인간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바꾼다.

결국 진·선·미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셋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 안에서 서로를 비추며 순환한다. 진이 선을 이끌고, 선이 미를 낳으며, 미는 다시 진을 깨닫게 한다. 그 순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서서히 알아간다. 장미가 피는 일은 노력이라기보다 자연의 필연이다. 그러나 그 필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씨앗이 흙을 뚫고, 줄기가 빛을 향해 자라야 한다. 진·선·미의 길 또한 그렇다. 그것은 노력 없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되찾기 위한 의식적 수행이다. 진은 사유의 투명함으로 나를 바로 세우고, 선은 그 중심이 흐름을 잃지 않도록 세상을 향해 열리게 하며, 미는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며 피워낸 존재의 향기다. 진·선·미를 함께 추구한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의 조화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방향성이다. 진 없이 선을 말할 수 없고, 선 없이 미를 얻을 수도 없다. 세상은 부분의 합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다움이란, 진실하게 사고하고, 선하게 흐르며, 아름답게 드러나는 존재의 상태다. 그것은 완벽한 자기 확립이 아니라, 끊임없이 중심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살아 있는 균형이다. 진은 그 중심을 비추는 거울이고, 선은 그 거울을 통해 세상과 이어지는 길이며, 미는 그 길 위에서 드러나는 전체의 조화다. 장미가 피어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듯, 인간도 진·선·미가 함께 숨 쉴 때 자신을 증명한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저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진은 그 질문의 투명함이고, 선은 그 질문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며, 미는 그 질문을 품은 삶이 남기는 향기다. 결국 인간이 향해야 할 길은 진·선·미의 조화 속에서 자기 존재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꾸밈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답게 서 있는 순간의 진실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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