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에 묻어있는 함양
함양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함양이라는 말은 종종 멀게 느껴진다. 어딘가 고전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수련이나 인격의 문제가 일어나면 슬며시 고개를 내밀지만 낯설다. 그래서 함양을 말하려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윤리와 도덕, 바람직함과 올바름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된다. 오히려 그것들이 마치 친숙한 이웃처럼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면, 그런 말들과 직접 연결되는 장면은 많지 않다. 하루는 흘러가고, 감각은 스쳐 지나가며, 삶은 대체로 설명되지 않은 채 축적된다. 나는 오랫동안 이 간극이 혼란스러웠다.
윤리와 도덕, 관습은 분명 일상에서 비롯된 개념들일 텐데, 정작 나의 일상은 그 개념들과 만나지 못한 채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삶이 개념에 닿지 못하고 비켜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일상은 왜 이렇게 개념과 어긋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함양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함양이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을 향한 훈련이라면, 그것은 이미 일상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함양이 일상이 흘러가면서 남기는 것을 다루는 방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 함양은 특별한 결심이나 각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주 낮은 곳,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 자리가 바로 감각이다.
우리는 흔히 감각을 순간적인 정보나 자극으로 여긴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일은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고, 대부분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은 쉽게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각은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감각은 세상과 내가 실제로 만나는 방식이다.
음식을 먹는 일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음식을 먹는 이유를 건강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한다. 그러나 먹고, 씹고, 삼키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몸에 남는 것은 단순한 영양분만이 아니다. 어떤 음식은 몸을 가볍게 하고, 어떤 음식은 묘하게 무겁게 남는다. 그 차이는 머리로 계산되기보다, 몸 전체에 흔적으로 남는다.
감각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과 교류하면서 수많은 장면과 말과 분위기가 우리를 통과한다. 그중 대부분은 흘러가지만, 어떤 것들은 몸 어딘가에 남는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느낌으로 남는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기억이나 감정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면 몸에 남은 반응에 가깝다.
음악을 들었을 때의 여운은 머리에만 남지 않는다. 어깨가 풀어지거나, 호흡이 느려지거나, 발걸음의 리듬이 달라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도 입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 전체가 이완되거나, 괜히 말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감각들은 사건으로 기록되기보다, 삶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감각은 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나의 확장형이라는 생각. 그리고 함양은 이 감각들을 통제하거나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교류 이후에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들여올지를 살피는 태도라는 생각. 이 관점에서 보면, 함양은 결코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함양을 너무 높은 곳에 두었을 뿐이다. 윤리와 도덕, 이상적인 인간상이라는 이름으로 함양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것은 일상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감각의 층위에서 보면, 함양은 이미 매일 작동하고 있다. 말 한마디를 하고 난 뒤 남는 찝찝함, 어떤 선택을 앞두고 생기는 설명되지 않는 망설임,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루가 유난히 무거운 이유. 이것들은 모두 이미 축적된 감각이 보내는 신호다. 함양은 이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흘려보내지 않는 관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관심이 훈련이나 노력의 이름으로 강요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함양을 다시 권위로 만들 필요도 없고, 전문가의 영역으로 밀어낼 이유도 없다. 감각을 살핀다고 해서 더 예민해질 필요도 없다. 다만 지나가는 것들 중 일부가 몸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잔여를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태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시작하는 함양’이라는 표현이 좋다. 이 말에는 어떤 기준도, 정답도, 목표도 들어 있지 않다. 다만 출발점만이 분명하다. 함양은 개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설명에서 시작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감각에서, 관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말의 선택을 바꾸고, 행동의 방향을 조정하며, 삶의 리듬을 조금씩 ‘나다움’ 쪽으로 기울게 한다. 이것이 함양의 작동 방식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에 증명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함양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러나 삶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유효한 하나의 도구다. 그래서 나는 함양을 버리고 싶지 않다. 내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