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마흔에 흔들리는 이유

by 김기황

'늦서리를 견디며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내삶을 가을바람이 위협하기 전에 겨울바람이 불어와서 파멸시키지 전에 가지에 매달여 있을 때 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사기(史記)’로 더 알려진 ‘태사공서(太史公書)’를 남긴 ‘사마천’의 인생은 아주 극적이었다.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였겠지만, 대를 이은 집안 임무인 황제의 순례기를 남기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 아버지는 가업을 이을 것을 요청하며 생을 마친다. 부친의 유언을 가슴에 새긴 사마천의 노력으로 가업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마흔 살 무렵에 엄청난 정치적 파동에 휘말리면서 그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위기에 처한다. 가업(家業)을 잇고 부모에 대한 효(孝)만을 마음에 품었기에 죽기보다 싫은 궁형(宮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참담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의 인생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정치적 사건을 헤쳐 나온 후의 사정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굳이 이미 화석이 된 인물의 아픈 상처를 헤집을 필요는 없지만 다른 시선을 얻기 위해서 양해를 구해본다.

공자가 창작한 불혹(不惑)이라는 단어는 마흔 시절을 지칭하는지 마흔 살을 지칭하는지는 분명치 않아 보인다. 논어가 기억의 편집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석을 남겼다. 대략 ‘마흔 살’과 ‘의심하지 않는다’로 받아들이면 무난해 보이기는 하다. 이 무난함이 꺼려지거나 어색하다고 느껴진다면 불혹의 매혹(魅惑)적인 유혹을 견뎌봄 직하다. 한문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학자의 의무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자들의 태도는 분명히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학자들의 태도만을 쫓을 필요는 없다. 일반인들에게는 학자들의 연구를 내삶에 적용시키는 상상력이나 다른 해석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이러한 해석은 학자들의 연구를 독려하는 바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연구는 강요하면서 타인의 상상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가진 학자들의 직업을 교수라고 한다. 직업을 넘어선 태도를 보이는 학자들을 사람들은 스승이라고 부른다.

마흔 무렵에 사마천은 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흔들렸을까? 사건의 전후를 기록한 내용에는 모든 정황이 사마천의 생각이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왜 사마천은 죽기보다 싫은 궁형의 선택을 강요받았는가? 사마천은 자신의 확고한 논리로 당시의 정치적 사건에 임했지만 주위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마천에게 불혹의 뜻은 ‘의심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자신의 지식과 정보로는 이 사건에서 그가 옹호한 사람이 죄를 받지 않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논리와는 상관없이 엄청나게 큰 불덩이가 자신에게 튀었다. 나이 마흔 무렵에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의심을 받았다. 이제부터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을 의심하게 되면서 흔들리게 된다. 이 흔들림은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는 흔들림이어야 한다.

불혹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긴 사람들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대개의 사람들이 마흔 무렵에 겪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 자신감은 마흔까지의 삶을 이끌어 왔던 가치들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삶도 살아갈 수 있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마흔 무렵에 자신이 믿고 있던 가치들로 세상을 해석하고 삶을 보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개의 사건이 우연적이고 돌발적이기에 어제까지 믿었던 가치들이 오늘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은 참담함 그 자체이다. 그리고 사마천의 그 후의 행적들은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된다.

불혹을 단순히 나이를 지칭하는 지식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흔들림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내삶을 일구어 가는데 유효하다는 것이다. 불혹을 ‘의심하지 않는다’로 새기더라도 그 속에는 변화의 기미가 숨겨져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말은 단순한 글자를 나열한 표현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변화의 낌새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 속에 묻어놓고 살기 때문에 애쓰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을 평범하다고 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말이 된다.

삶이 흔들리거나 어렵지 않을 수는 없다. 불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는 상태에서도 배움과 세움의 단계를 거치면서 내면의 질서를 세운 것을 잃지 않았다는 과정으로 보는 해석도 의미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인간관계로도 많은 사람이 흔들리면서 산다. 그러면서 어떤 이들은 소유를 통한 경제적 부, 명예를 획득한다. 그런데 이들도 흔들림을 겪는다는 것이 흔들림은 외부적 혼란이나 곤란이 아니라 내면의 혼란임을 이야기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혼란은 당연하게 이해된다.

공자의 불혹은 지천명으로 이어진다. 천명은 중국 고대 사회의 혼란기에 새로운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던 사람들이 만든 표현이다. 그때까지 하늘의 명(命)을 따르던 사람들의 이탈이 심해지자 하늘의 명, 천명이 움직였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그때 천명의 뜻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태생이 정치적인 표현인 천명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배를 위한 권력보다는 개인의 삶의 무늬가 중요하게 자리 잡은 현대의 우리에게는 반드시 유효한 가치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천명이 탄생하게 된 그 과정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부분은 있다. 기존의 천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천명으로 변화시킨다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극복할 천명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에게 있어 기존의 천명이 나의 오랜 습관 들이라면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천명으로 내삶의 방향을 재점검해 보는 것이 천명이 주는 시사점이다. 하늘은 명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발명하였으나 사회의 체계에 남아있는 것뿐이다.

공자의 통찰은 불혹이 이순(耳順)으로 이어진다. 나에게 전해지는 세상의 일들이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다로 넓게 해석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말이 없어지고 모든 일에 미온적이라는 말들을 아주 쉽게들 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소리 지르고 성내고 함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서 말이 없어지고 모든 일에 미온적이 되며 위축되고 소극적이 된다고 하는 우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공자의 이순(耳順)이라는 통찰 속에서 살펴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거슬리지 않는데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행동이 나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데 굳이 눈을 치켜뜰 필요는 없다. 말을 하고 눈을 치켜뜨면 꼰대로 취급받고 말이 없고 미온적인 행동을 하면 효용가치가 없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기 일쑤이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딛자니 죽음이 코 앞이다. 내삶은 어디에 있는가?

평균 수명이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수명이 길어진 것이 어떤 상황을 몰고 올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불혹이라는 통찰을 얻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공자는 칠십을 넘게 살았다. 그리고 칠십에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여도 기준을 넘어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불유구(不踰矩)라는 창작물을 남긴다. 사람들은 이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을 품은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耳順)이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포용하는 태도라면 불유구(不踰矩)는 내부에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관대함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구(矩)는 곱자를 말한다. ‘ㄱ’ 자의 형태로 되어 길이보다는 굴곡이나 휘어진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어떤 기준안에 포함되는지를 알아보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공자는 칠십이 지나서는 마음먹은 바를 행하더라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통찰을 제자들에게 남겼다. 도대체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으면 사회의 기준을 넘지 않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유심히 살펴봄 직한 것 같다.

우리는 연령대를 구분한 여러 단어를 지식으로 암기한다. 지식을 암기하여 이해하고 거기에 생각을 더하면 지혜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 지혜는 자신과 그 지식이 발현된 그 순간에만 지혜일 뿐이다. 그 순간이 지나거나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공자의 일생을 돌아보고 남긴 통찰이 나에게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공자가 남긴 그 어휘들을 가지고 내삶에서 그런 통찰을 시도해 보는 것이 공자가 남긴 어휘들을 암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자가 남긴 불혹(40무렵), 지천명(50무렵), 이순(60무렵), 불유구(70무렵)라는 표현 속에 흐르는 기조는 변화이다. 그리고 변화는 흔들림이다. 혹(惑) 자의 뜻에는 흔들린다는 뜻은 없다. 마음이 헷갈리어 갈팡질팡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으아스럽게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을 흔들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불유구(不踰矩) 일 것이다. 마흔에는 누구보다도 크게 흔들리겠다는 각오가 앞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율배반에 또 흔들린다. 내삶이다.

불혹에는 흔들림을 각오하라는 말은 흐릿한 풍부함에 스며들어 선명한 꼿꼿함을 지향하는 태도로 불혹을 맞이하겠다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세상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탁월함에 도달해 보겠다는 욕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강화되는 것은 나쁘고, 악한 것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좋은 것, 착한 것, 기쁜 것은 일상이다. 그래서 흐릿한 기억으로 흩어져 버린다. 긍정적인 경험들은 흐릿한 기억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을 부정적인 느낌으로, 부정적인 경험들은 뚜렷한 기억으로 남는 것을 긍정적인 느낌으로 남김으로써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흔들어야 하는 것은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정을 유발하는 생각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언제가 터지는 흔들림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흔들린다는 것은 내삶의 영역에서 이제까지 확보할 수 있던 자원으로는 현재의 삶을 설명하기가 어렵고 미래의 삶을 대비하기도 곤란하다는 상황임을 감지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기억들의 흐릿함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듯이 부정적인 상황들의 흔들림도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분적 사고가 양날의 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흐리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 흐리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상황을 감지했을 때 눈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머무름과 나아감. 머무르는 것은 흔들림을 견디겠다는 것이다. 나아감은 흔들림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나아감을 선택한다면 이제까지 자신이 확보한 경계를 흔들어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행동을 해야 한다. 다른 영역의 자원을 확보해야 다람쥐의 겨울은 넉넉해진다. 다람쥐는 다가올 겨울의 상황을 예측하지 않고 겨울 양식을 확보한다. 그리고 다가온 겨울의 상황에 따라 비축해 둔 양식으로 넉넉하게 겨울을 난다. 때로는 비축해 두었던 양식을 잊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때로는 더 많은 양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 거대한 숲을 만들어 다른 생명들을 품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도 흔들림에 취약하지 않는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 나아감을 선택한 흔들림을 대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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