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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 Jun 30. 2022

돈을 벌수록 돈이 없는 사람

어디서 이렇게 돈이 빠져나가는 거지

나는 직장인이다. 직장을 다닌지는 2년이 조금 안 된 1년 8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사실 나 스스로 돈을 번 건 스무 살 때부터이다. 


스무 살, 아니 수능이 끝나자마자 나는 과외를 시작했다. 15살 남자아이의 수학 과외였다. 첫 과외는 서툴렀지만 직접 나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공부방에서의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게 되었다. 공부방에서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학을 채점하거나 질문에 답해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중학교 시험기간에는 암기과목에 대해 일대일로 암기에 대해 검증하는 역할을 했다. 사실 공부방에서는 주로 채점과 같은 보조적인 일만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간에 맞춰했던 공부방 아르바이트는 자연스럽게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롭게 시작한 일은 로드샵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였다. 나서는 성격도 아니라서 걱정은 했지만 공부방 아르바이트도 과외도 끝났을 시기이기 때문에 당장 용돈이 시급했다. 화장품 가게는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또는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였다. 


대학교 3학년 때에도 여전히 화장품 가게에서 일을 했다. 이미 1년이 지난 상태이기 때문에 시급도 오른 상태였고 일이 능숙해지다 보니 다른 일을 병행해도 괜찮을 정도가 되어 두 번째 과외가 시작됐다. 두 번째 과외는 16살의 남자아이의 수학 과외였다. 과외는 이전과 같이 주 2회였고 시험기간에는 수학 이외의 과목에 대해서도 시험 범위에 한에서만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이라고 하고 그냥 질문에 대한 답변뿐이었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졸업 작품에 대한 시간이 촉박했을 뿐 실질적인 수업에 대해서는 시간이 꽤나 여유로워졌다. 그때 화장품 가게와 과외 그리고 공부방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화장품 가게는 주말에 주로 나갔고 과외는 평일 주 2회 그리고 공부방은 평일 주 1-2회였지만 보통 방학 때는 주 3-4회 정도였다. 이때 두 번째 과외가 끝나면서 공부방에서 연결해준 세 번째 과외가 시작됐는데 17살 여자아이였다. 아마 이때 과외비가 가장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교 다니는 내내 두 개에서 세 개 정도의 일을 병행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등록금은 100퍼센트 부모님의 지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가 번 돈은 그대로 내가 써도 되는 상황이었다. 남들보다 한 달 동안 두배 가까이 되는 돈을 쓸 수 있으니 씀씀이는 헤펐고 돈이 부족해서 손을 벌릴 상황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나서 모든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취업준비에 뛰어들었다. 사실 말이 취업준비였지 졸업을 하고 이제 일도 안 하도 되는 상황에 자유시간이 생기게 되면서 하루 걸러 놀기 바빴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약속 잡히면 하루 종일 돈을 쓰기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6개월이 지나 모아둔 돈은커녕 당장 나가서 뭘 사 먹을 돈도 없어진 걸 알게 되자 급하게 일할 곳을 찾았다.


그렇게 첫 직장이었던 조교 생활이 시작됐다. 사실 말이 첫 직장이지 1년만 가능한 계약직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다니던 모교에서 (비록 다른 학과였지만) 조교를 하는 거였고 새로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와 다른 기분으로 최저시급으로 측정된 월급을 받으면서 1년 동안 착실하게 근무했고 계약이 종료된 시점에 실업급여를 받을 조건도 갖춘 채로 다시 백수의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다시 직장을 잡는 1년 반 정도의 빈 공간이 생겼다. 그동안 실업급여라던지 1년간 일하는 동안 모아둔 돈을 열심히 까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 직장을 구했다. 어찌 됐든 최저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연봉에 기분이 좋았고 계획적으로 쓸 생각에 머리를 굴렸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하지 사지 못했던 것 먹지 못했던 것 가지 못했던 곳에 갈 수 있다는 거에도 기뻤다. 실제로도 그렇게 사용했고 나를 위해서도 썼지만 지금까지 나를 위해준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일 년이 더 지나서 현재가 됐고 현재 나는 돈이 없다. 돈이 없다는 게 빈털터리라는 말은 아니다. 내 자산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당장 내일 무언가를 사 먹을 돈도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제 큰일을 계획하고 큰일을 치르는 동안 사용해야 할 돈의 액수를 따져봤을 때 그동안 뭘 했나 싶을 정도로 돈이 없는 건 사실이다. 흥청망청 썼다기보다는 쓰지 않아도 될 곳에 쓴 적이 많긴 하지만 이 정도였나 싶긴 하다. 그리고 적금으로 넣는 돈이 많아 당장 융통할 현금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그래서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보다 한 달 동안 쓰는 돈이 더 적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모을 생각도 적게 써서 목돈을 모아 사용해야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맘 편하게 한 달 버는 돈을 한 달 동안 썼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버는 지금. 사용하는 돈의 액수는 현저히 적어졌다. 더 아끼고 더 모으게 되면서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돈은 이전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해졌다.


가끔은 돈을 모으지 않고 한 달 동안 번 돈을 시원하게 사용해버리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나도 내가 번 돈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좀 더 사고 싶은 거 맘껏 사고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모아둔 돈이 없는 상태를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건 아닐 거 같다. 당장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일정 금액을 벗어나 내려가게 되면 걱정부터 앞서는데 이것도 약간 강박인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과거의 나의 생활도 만족했고 지금의 생활도 만족한다. 비록 통장의 액수만 보면 한숨부터 나지만 별 수 없지 뭐... 과거에 커피에 디저트 정도 사서 먹는 건 일도 아니었던 내가 생수만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내가 됐어도 나중에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병 간지 나게 사서 마시려고 하는 거니까. 합리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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