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규 Aug 26. 2022

백수 1일 차

사실 휴가 중입니다.

나는 백수다.

이틀 전에 퇴사 통보를 했고 하루 만에 결재가 끝나 오늘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백수이다. 아마 남은 휴가 일수를 다 차감해야 퇴직처리가 되겠지만 어쨌든 남들 출퇴근하는 시간에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전날 송별회 덕분에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일찍 잠이 들어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눈이 떠져서 그대로 누워서 눈만 껌뻑였다. 정말 출근 준비 안 해도 되는 건가. 길게 멍을 때리다 우선 씻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만 있어봐야 아무것도 안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나갈 채비를 했다. 책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충전기와 회사에 가지고 다니던 것과 같이 도시락을 챙겼다. 집을 나섰는데 하필 가볼까 했던 도서관이 휴관일이었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도서관이 아니면 어디 가지. 하는 생각에 문득 스터디 카페가 생각이 났다. 어차피 어디든 앉아서 노트북 이용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 근처 스터디 카페를 검색했다.


집을 나온 시간은 8시 10분. 9시에 문을 연다 던 지 리모델링으로 인해 당분간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 가까운 곳을 찾아갔다. 스터디 카페에는 처음 오게 되어 입구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미리 시간별, 기간별 결제를 해야 입장을 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이용하기 위한 9시간을 결제하고 앉을자리를 선택한 뒤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건 우선 휴게실이었다. 입구 기준으로 오른쪽은 사물함이었고 왼쪽은 휴게공간이었는데 작은 공간에 꽤나 많은 걸 가져다 놨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명 정도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작은 사이즈의 투명한 냉장고, 커피 머신과 정수기가 있었다. 그리고 필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놓아둔 사무용품 비품 서랍이 있었고 또 별게로 노트북 이용자를 위한 무소음 마우스, 무소음 마우스 패드, 무소음 키보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우스, 마우스 패드, 키보드를 모두 들고 스터디룸으로 들어갔다. 스터디룸의 가장 오른쪽 상단 구석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장 끝으로 갔다. 각 모서리에는 공기청정기가 열심히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각 책상에는 두 개의 구멍이 나있는 콘센트가 있었고 스탠드가 서 있었다. 공간도 꽤 컸기 때문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잠시 빌린 장비를 연결하고 가방도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아도 공간이 여유로웠다.


8시 30분쯤 들어온 내부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사람만이 있어 굉장히 조용했다. 어찌 됐든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이 사이에 크게 들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뽁뽁이를 누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걸 제외하고는 정말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나는 생활 소음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거 같았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뭐를 해야 할까. 우선 유튜브를 열었다. CS 면접 강의를 봤다. 영상을 하나 다 채 보기도 전에 어제 쓴 내 글에 들어가 엄마가 남긴 댓글을 봤다. 그러면서 브런치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조금 읽다가 이번에는 잡플래닛에 들어가 다니던 회사에 대한 리뷰를 썼다. 그리고 잠시 다른 사람들과 카톡을 하다가 다시 브런치에서 읽던 글을 마저 읽었다. 다 읽고 나니까 오후 두 시가 되었다.


스터디 카페에서의 한 가지 단점은 전자레인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있는 곳도 있겠지만 하필 오늘 내가 온 곳은 없었다. 내가 가져온 음식은  차갑게 얼어있는 감자였기 때문에 그대로 먹을 수도 없어 감자는 오늘 저녁에 집에서 데워 먹기로 하고 스터디 카페를 나와 스타벅스로 향했다.


남자 친구가 점심으로 바꿔 먹으라며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줬지만 스타벅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췄다. 내 눈에 육회비빔밥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부가 안 보이고 겉으로 보기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이었다. 일단 육회비빔밥을 판다니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아무도 없길래 장사하는 시간이 아닌가 했는데 뒤따라 들어온 직원이 인사를 해서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육회비빔밥 지금 되냐고 묻자 된다고 대답하고는 원하는 자리에 편안하게 앉으면 된다 했다. 사실 편하지 못했다. 내가 들어온 식당은 소고기 오마카세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육회비빔밥을 주문받은 직원은 주방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소 잡는 거부터 하고 있는 거 같아 포기하고 휴대폰을 했다. 이십 분은 채우지 않고 육회비빔밥을 들고 나온 직원은 또 한참 내 눈에는 보이는 저 안쪽에 음식을 두고 또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나 배고픈데. 또 한참이 지나서야 밥그릇만 한 그릇을 또 들고 나오더니 그제야 내 자리에 수저 아래 휴지까지 놓아주면서 세팅을 해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 큰 그릇의 정체는 묵사발이었다.


만원의 육회비빔밥은 육회비빔밥뿐만 아니라 묵사발과 김치, 김이 같이 나왔다. 맛도 있었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발라드만 나오는 작은 음악 아래 정말 조용하고 고요한 식당 안에서 나 홀로 밥을 소리 내면서 먹기가 힘들었다. 원래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내 먹는 편은 아니긴 했지만 저절로 더욱 조심스럽게 먹게 되었다. 더군다나 한 요리를 30분간 준비한 정성에 밥을 남길 수도 없어 배가 터지도록 밥을 싹싹 비워먹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맛은 정말 맛있었다.


30분 기다린 뒤 10분 만에 먹은 점심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다시 스터디 카페로 돌아왔다. 사실 돌아와서 앉았음에도 CS면접 강의 영상은 흥미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배가 부른 상태에 나른함까지 찾아와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영상을 보고 있자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다시 영상을 멈추고 웹툰을 봤다. 오늘 나온 웹툰 두 편을 보고 난 뒤 오늘 있던 일이나 쓰기 위해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눌렀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별로 나간 진도는 없지만 뭐 시작이 반이니까. 이제 오후 다섯 시가 넘었으니 여섯 시에 슬슬 정리하고 집에 가려고 한다. 아침에 결제했던 9시간이 꽤나 빨리 지나간듯하다. 집 갈 때 바나나 하나 사가는 거 잊지 말아야지(동생 심부름).


[요약]

1. 스터디 카페 9시간 결제

2. 면접 강의 30분 시청, 7시간 딴짓

3. 소고기 오마카세 식당에서 육회비빔밥 점심

4. 무소음 키보드 내 스타일 아님

5. 돌 바나나 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가 좋은 건 무슨 느낌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