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술...

꿈까지 꾸게 만드는 술

by 서규

14살, 내가 처음 술을 마시게 된 날이다. 물론 이때는 술을 술로 알고 마실 나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일탈을 하겠다고 숨겨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빠와 등산을 다녔고, 그당시에는 등산로 중간중간에 마른 멸치와 마늘쫑 등등을 안주 삼아 한잔씩 팔던 막걸리를 한두입 마시는 정도였다. 그렇게 엄마 몰래 한잔한잔 아빠와 삼촌의 잔에 든 술을 조금씩 마시다가 스무살, 본격적인 음주가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인줄 알았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그 위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술을 좋아했고 그런 환경에서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는 문화에 접했기 때문에 나와 술은 멀어질 수 없는 존재였으며, 나 역시 그들에게서 자라왔으니 당연히 술을 잘 마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술자리를 좋아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술을 더 마시려는 주사만 있었을 뿐, 해독조차 못하는 알콜 쓰레기에 가까웠다. 그것을 대학 4년, 취준 1년, 직장생활 4년 동안 천천히 주변 사람들에게 다양한 민폐를 끼치면서 알아갔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서야 (사실 아직도) 적당히 마시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럼에도 주 1-2회 음주는 계속 되었다. 내가 가장 오래 술을 마시지 않았던 기간은 결혼 전부터 결혼 당일까지 총 3개월 간이었다. 물론 이 기간은 그동안 열심히 먹고 마신 탓에 불어난 살을 느끼지 못하고 웨딩 촬영을 하였다가 본 나의 처참한 원본 사진으로 인한 의지였다. 어떻게든 웨딩 드레스에 몸을 맞추기 위해 술 뿐만 아니라 맛있는 모든 음식을 절제 했고 그덕에 3개월 동안 웨딩 촬영 보정 사진에 흡사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혼집에 오자마자 소주를 마셨고, 다음날 신혼여행지에 가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기내에 있는 모든 와인과 맥주를 마실 기세로 잠도 거르고 마셨다. 신혼여행지에서는 식사마다 잠들기 직전까지 다양한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도 신혼의 달달함을 느끼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해서 술을 곁들었다. 남편과 둘이 앉아 영화를 보면서 잔을 부딪히는 행위 만큼 좋은 건 없었다. 그렇게 거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빼고 술을 마실 만큼 자주 술을 마시게 되었고 그만큼 결혼 전보다 더 많이 살이 불어났다.


신혼을 1년간 충분히 즐긴 결과 앞자리가 수 번 바뀔 정도로 몸무게가 늘게 되었다. 날이 풀리면서 봄 옷을 꺼냈을 때, 맞는 옷이 없다는 걸 느낀 후에야 내 몸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고 그렇게 내 음주 주기는 주 1-2회가 되었다. 물론 평일 내내 다이어트식을 먹어도 주말에 술을 마시자마자 많은 양의 안주를 찾는 탓에 다이어트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술을 아예 안 먹는 건 힘들었기 때문에 평일을 더 조이는 식으로 다이어트를 지속했다. 그만큼 주말에 마시는 술을 끊기 어려웠다.


그러다 덜컥 임신이 되었고, 이제는 더이상 주말에도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 눈 앞이 깜깜했다. 술을 어떻게 안 마실 수가 있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참으려면 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왔다갔다 했다. 사실상 내가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하고 산부인과에서 확인 받은지 이제 겨우 2주가 흘렀으니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꿈을 꾸기 전까지는.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과 함께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그 마시고 있던 게 소주라는 걸 알 게 되었고, 그 소주를 거진 한 병을 다 마셔 간다는 사실도 알 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너무 놀라서 남편과 엄마에게 말을 하게 되었고, 산부인과에서 앞으로 절대 술을 마시면 안 되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면서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지금이라도 토하면 괜찮을까, 아직 아기가 6주인데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 이러다가 아기한테 문제 생겨서 유산이라도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며 지금은 주말이니 내일 당장 산부인과에 가봐야 겠다고 얘기하는 도중에 잠에서 깼다.


사실 아직도 긴가민가 하다. 내가 진짜 술을 먹고싶어해서 이런 꿈까지 꾸는 건가 싶은 생각에 앞으로 남은 임신 기간이 너무 답답했다. 내 생각으로는 별로 술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데, 그냥 꿈은 반대라고 편하게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아직도 의문인 채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는 도중 문득 생각이 든 건, 나는 개인적으로 술보다 커피를 더 마시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마시고 있는 에이드가 너무 달아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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