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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생일 보내기

생각보다 아무렇지... 흠

by 서규

나는 나름 활발한 사람이다. 집에 있는 거보다는 밖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거보다는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 만삭이고 밖에 오래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 된 이후부터는 생각보다 자주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 생일에는 항상 약속을 잡았다. 약속이 없는 날이라면 매일 나가는 학교, 학원, 직장에서 특별한 날임을 밝히고 축하를 받았다. 그래서 매년 직접적으로 나름 시끌벅적하게 축하를 받아왔다.


이번 생일은 좀 특별했다. 집에 있는 백수 상태에서는 굳이 밖을 나가지 않으면 대화할 상대가 없었고 있다 해도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일 테니 내가 생일이라 축하를 해달라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약속을 잡으면 되지 않나? 싶을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만삭인 임산부가 평일에 혼자 갈 수 있는 범위는 크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주말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집에 있는 점심을 대충 차려먹으며 유튜브를 시청했다. 간간히 오는 지인들의 축하 카톡과 언제 어디서 방문했는지 모를 병원 등에서 오는 축하 문자들이 휴대폰에 점차 쌓였다. 대충 먹은 걸 치우고 집안일을 하다 보니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되어갔다. 요즘은 남편이 퇴근해야 대화할 사람이 생겨서 그런지 오후쯤에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게 기다려질 정도가 되어간다.


유독 태동이 심한 날이다. 남편은 포동이가 생일빵을 하는 거라고 했다. 진짜 맞는 거 같다. 친정에서 보낸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시댁에서 보낸 치킨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평소처럼 넷플릭스 하나를 켜놓고 프로그램에 대해 대화를 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뒤 소원을 빌고 불을 껐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온 해바라기 꽃다발을 받았다. 사진을 여러 번 찍고 긴 맥주잔에 물을 받아 꽃을 담았다. 당근으로 산 애기 침대를 조립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의 대부분이 남편 퇴근 후 이뤄졌다. 나는 혼자 오래 있기는 힘든 사람인 거 같다.


정말 이번 생일은 유독 조용했다. 주변도 조용했고 나 역시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아마 이렇게 조용하게 보내는 생일은 당분간 안 올 거 같다. 내년부터는 내 생일초도 뱃속의 얘가 불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미래에는 그리워질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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