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박람회 갔다 온 썰 푼다.
웨딩 박람회를 다녀왔다.
위치는 삼성역 근처 웨딩홀 건물 3층이었다. 시간을 일부러 이른 시간으로 잡아서 남자 친구는 차로 나는 지하철로 각자 출발해 건물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약 시간 10분 전에 박람회 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알 게 되었다. 우리의 호칭은 신랑님, 신부님이 되어있었다. 안내해주시는 분께서 예약자 이름을 물어보고 바로 예약된 플래너 분에게 데려다주셨다. 네일이 아주 화려하고 예쁜 플래너였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신랑님,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어색했다.
플래너 상담은 꽤나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아쉬운 건 아직 예정일이 1년 이상 남아 있어 예식장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거였다. 예식장은 1년 기간을 잡고 플랜을 짜기 때문에 우리의 예정일에 대해서는 아직 나온 데가 없어 상담이 힘들다는 게 플래너의 말이었다. 안 그래도 이미 남자 친구가 예식장에 상담 예약을 넣었을 때 상담이 아직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식장을 제외하고 먼저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줄임말)를 상담받았다. 애초에 가격을 알아본 적도 없고 그냥 '아, 이 드레스 예쁘다!', '이 스튜디오 예쁘다!' 이런 생각만 하면서 사진만 보고 가게 된 거라 생각보다 백 단위를 훌쩍 넘는 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레스 요모조모 해서 몇 백, 스튜디오 샤랄라 한 거 선택하려면 몇 백, 메이크업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놉! 잘하는 데에서 하려면 또 몇 백. 하지만 그 몇 백은 기본값이었고 친절하게 펜으로 쓰시면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플러스알파.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플래너가 보여주시는 드레스 사진이며 스튜디오 사진은 정말이지 왜 사람들이 결국 결혼 준비 중에 욕심을 부리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보여주시는 드레스 사진을 보면서 '너무 예뻐요!', '어, 이거 이쁘다.'가 자동으로 나왔다. 결국 나는 가슴라인이 있고 어깨를 훤히 드러내는 화려한 드레스를 좋아한다고 결론이 났다.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스튜디오는 원래 크게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에 대리님이 야외에서 찍은 웨딩사진을 보여주신 이후로 힘들겠지만 야외 촬영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외를 얘기하자 플래너가 보여준 스튜디오는 정말 이 사람 프로긴 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눈 뜨고 코 베일 지경) 먼저 마음에 들었던 스튜디오는 지하 스튜디오였는데, 뒷 배경을 야외 배경으로 만들어 두고 꽤나 디테일한 장식으로 꾸며놔 사진 상으로 야외에서 찍은 거 같은 느낌을 주는 스튜디오였다.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진짜 야외 촬영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마음에 든 스튜디오는 두 곳이었는데, 두 곳 다 경기도 근교에 위치한 스튜디오였다. 특징은 건물을 포함한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한 스튜디오에서 실내와 야외 촬영 두 가지가 가능한 게 특징이었다. 더군다나 스튜디오 자체에서 드레스와 메이크업 대여도 진행하고 있어 드레스 샵에서 촬영용 드레스를 따로 대여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었다. 사실 첫 번째 스튜디오도 정말 사진이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단박에 두 번째를 가장 베스트라고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남자 친구와 선호하는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선장을 따라야 한다는 플래너의 말에 남자 친구는 의견 내기를 취소했다. 귀여움. 별개로 나중에서야 남자 친구가 말해준 얘기였지만 플래너는 나만 보고 얘기했다고 한다. 자기를 본 적이 없다고 했음. 이름 물어볼 때 제외하고는. 귀여움22.
사실 오늘 결정 낼 건 아무것도 없어서. 환상으로 가득 찬 가슴과 돈돈 들어찬 머리로 인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 잡고 플래너의 명함을 받았다. 플래너 네일 너무 예쁘고. 사실 너무 잘 설명해주시고 앞으로 진행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청담 등의 서울 위주의 설명이었어서 부담이 컸다. 식을 준비하는데 이동 거리로 시간을 다 쓸 거 같은 느낌.
예물을 보러 갔다. 사실 예물도 하나도 알아본 적이 없어 이번에는 나와 직원분 모두 남자 친구만 바라봤다. 그리고 얘기를 시작한 직원분은 진짜 하나도 빠짐없이 '영업이다. 찐 영업사원이다.'라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영업하셨다. 근데 진짜 너무 끌리도록 말을 하셨다. 결국 여러 혜택과 예물을 했을 때 제공되는 여러 물품들로 우리를 현혹시킨 뒤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셨다. 남자 친구와 대화를 해본 결과 이미 예물과 관련해서 여러 곳을 알아본 결과 나쁘지 않은 혜택이고 괜찮은 조건으로 해주시는 게 맞다고 했다. 그래서 홀딩 걸어버림. 30만 원 걸어버렸죠.
사실 예물부터 진이 빠지기 시작해 예물 결정이 끝났을 무렵 굉장히 피곤한 상태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알고 결정해야 하는 게 많았고 그 과정에 빠질 수 없는 건 돈이었다. 돈돈돈... 벌어도 벌어도 흐르듯이 나가버리는 돈...
이제 드디어 끝인가 하는 생각에. 출구로 나가려고 하는데 피부 미용 관련 업체 직원분께서 오시더니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신부의 피부, 신부의 어쩌고 하면서 내 어깨와 팔뚝(가장 기분 나쁜 포인트였음)을 막 만져대시면서 관리하기를 강요했다. 계속 따로 관리받는 곳이 있다고 하면서 (사실 없음)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만 받으라면서 길을 막고 비켜주질 않았다. 그리고 계속 만지는 것도 불쾌했고... 좋은 날 화내고 싶지 않아 끝끝내 웃으면서 거절했다. 피부과 직원분을 지나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여기 설명 한 번 들어보라고 나이가 좀 있으신 직원분 앞에 우리를 앉혔다. 이건 또 무슨 영업일까. 하는 생각이 들 찰나에 직원분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신부가 너무 예쁘다며 치켜세웠다. 응! 난 팔랑귀니깐!
더군다나 앉자마자 1년 여행 할인 쿠폰을 주시면서 숙박 등 할인이 큰 폭으로 들어가는 화면을 보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행사에서 오신 줄 알았다. 신혼여행 추천해주시려고 그런가. 했는데 갑자기 재무설계를 받아본 적이 있냐는 말을 하시면서 우리의 재산에 대해 물었다. 숨길 것도 딱히 없어서 바른대로 얘기했는데 자산을 관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면서 희한하게 계속 보험 쪽으로 얘기가 기울었다. 우리가 지루해하는 티를 내니까 바로 비타민씨를 하나씩 주시면서 얘기를 이어가셨다. 예물 직원분이랑은 다른 느낌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그 직원분은 우리가 현혹될 수밖에 없는 얘기를 하면서 정신을 쏙 빼놓았으면 여기 계신 직원분은 천천히 우리가 거절한 채로 일어날 수 없게끔 길게 얘기를 이어나가셨다. 그리고 약간 혼이 쓱 빠져나가려고 할 때쯤 자연스럽게 보험 계약 신청서를 들이미셨다. 와, 진짜 자연스러웠다. 방금. 우리가 살짝 꺼려하는 기색이 보이자 얼른 이전에 신청서를 쓰고 가신분들의 리스트를 보여주셨다. 97년생이 보였다. 아.. 저런 97년생 친구 파이팅.. 다행히 남자 친구가 저희는 보험 들 생각이 없다고 얼른 일어났다. 어정쩡하게 일어난 채로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연락처라도 남겨두고 가라고 하시는 터에 어쩔 수 없이 연락처는 남기고 왔다. 진짜 전화 오면 차단해야지.
드디어 이제 끝인가 하면서 나가는데 또 붙잡혔다. 여기 너무 개미지옥 같아.라고 남자 친구한테 말하자 남자 친구도 굉장히 지친 얼굴로 맞다고 했다. 아까 예물까지만 좋았다, 진짜. 주차 할인권을 받고 인감도장을 무료로 만들어준다는 직원분의 얼굴은 우리 앞에 여러 명이 왔다 갔을 텐데도 여전히 생글 생글이 었다. 영업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말 취소. 나는 절대 영업 못해. 직원분은 여지없이 우리에게 이건 박람회를 온 사람들에게 드리는 혜택이라면서 10원 한 장 안 들이고 인감도장을 만들어 집에 보내주겠다고 얘기했다. 원래 본론은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신용카드를 가입하면 된다는 얘기로 마무리 지었다. 아 이번에는 신용카드구나. 신용카드 만들 생각 없다고 가려고 하자 가입하고 해제해도 된다는 말로 계속 붙잡으려 들었다. 연회비 없는 신용카드가 어디 있고 가입 후 바로 즉시 해제가 바로 되는 신용카드가 어디 있지. 여하튼 신용카드 직원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박람회를 빠져나왔다. 박람회 입장 시간 10시 40분 나온 시간은 1시 40분이었다. 한두 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박람회를 3시간이나 있었다. 정말 다행히 알짜배기만 건지고 나온 것 같아 서로를 대견해했다. 진짜 정신 못 차리면 뼈도 못 추렸을 박람회 후기 끝.
다음에는 우리 동네 근처에서 하는 박람회 가야지. 아, 그리고 빼먹은 말이 있는데 여기 주차 할인권 쓰고 만원 나옴. 진짜 강남 너무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