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소득 vs 기본소득 그리고 모두까기(?)
이재명지사는 사촌이라는데, 유승민 전 의원은 한사코 남남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공정소득’과 ‘기본소득’은 어떤 사이일까?
이재명지사의 기본소득은 서서히 그 실체가 구체화 되고 있지만, 유승민 전 의원의 ‘공정소득’은 아직 모습이 명확하지 않아서 사실 단정 짓기가 어렵다.
유승민 전 의원의 페이스북에 제시된 ‘공정소득’을 기본으로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공정소득’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NIT(negative income tax – 음의 소득세 or 부(負)의 소득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안심소득’ 또는 ‘공정소득’ 모두 ‘음의 소득세’의 한국형 버전이다.
유승인 전 의원이 주장하는 공정소득(NIT)은 소득이 일정액 이하인 국민들에게 부족한 소득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근로능력이 없거나 열심히 일해도 빈곤 탈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별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같은 정부예산이라면 기본소득과 공정소득(NIT) 중에서 어느 정책이 더 나은가?기본소득에 쓸 돈을 소득 하위 50%에게 주면 2배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공정소득(NIT)이 훨씬 우월하다. 기본소득은 反서민적이라고 내가 비판하는 이유다.
딱 들으면 참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같은 정부예산이라면’의 문제이다. 이재명 지사는 그 정부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 세수 우선 순위 조정, 국토보유세 및 탄소세 등 세금 신설 등으로 재원마련 대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증세에 대한 저항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돌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그런데 ‘공정소득’, ‘안심소득’은 어떻게 ‘같은 정부예산’을 마련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은 정부예산’을 투여해서 실질적으로 소득 하위 50%에게 2배로 주겠다고 플랜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같은 정부예산’을 마련하려면 증세가 필수인데, 그 증세를 ‘공정소득’의 논리 가지고 실현해낼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복지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과연 상위 50%가 세금 더 내가면서 동의하겠는가 의심하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을 좌절시키고, 공정소득도 실시하지 않아서 빈곤층은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상태에 머물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둘째는 ‘같은 정부예산이라면’에서 나눠주는 것만 생각하고, 걷는 것은 빼놓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정부예산’을 나눠주는 면만을 생각하면 유승민 전의원의 ‘공정소득’ 논리가 맞아 보인다. 그런데 걷는 것까지를 포함하면 ‘공정소득’이나 ‘기본소득’이나 똑같다. 이런 점 때문에 이재명 지사는 사촌간이라고 하는 것이고, 나눠주는 것만 생각하니 유승민 전의원은 남남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걷는 것까지 포함하면 같은지 알아보자.
부자가 빵 하나를 준비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빵 하나를 주자는 것이 공정 소득이다.
반면 기본소득은 부자가 빵 두 개를 준비해서 자신이 빵 하나를 갖고, 가난한 사람에게 빵 하나를 주자는 것이다.
부자 입장에서 초기에 빵 하나를 준비할 것인가? 둘을 준비할 것인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돌려받는 것까지 생각하면 빵 하나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사람은 공정소득이든 기본소득이든 그냥 빵 하나를 받는 것이다.
부자가 빵 둘을 거둬서 가난한 사람 빵 둘을 다 주는 것이 공정소득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기본소득은 빵 넷을 거둬서 빵 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똑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가난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양을 설정하고 부자에게 그 두배를 거둬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것이다.
이러니 공정소득이나 기본소득이나 사촌지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애당초 빵 하나만 걷는 것이 낫지 않느냐? 뭐하려 빵 둘을 걷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이재명 지사식으로 이야기하면 ‘기분’이다. 부자는 내기만 하고, 받지 못하면 억울하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부자도 받아야 내는 기분이 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맞는 말 같지만 설득력이 솔직히 부족하다.
유승민 전 의원을 그래서 이 지점에 대해 다음처럼 비판했다.
“이지사는 "왜 부자들은 돈을 안주고 차별하냐"고 한다.이 말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속임수다. 그런 논리라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건 차별 아닌가? 그리고 이지사는 앞으로 기본소득을 하겠다고 부자들과 중산층에게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거두어갈 것 아닌가? 그러면서 소액의 기본소득을 주는 것을 갖고 마치 중산층, 부자들을 대단히 위하는 것처럼 속이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빵 하나를 걷지 않고, 빵 두 개를 거둬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차이는 ‘시혜’와 ‘권리’의 차이이다.
‘공정소득’,‘안심소득’은 가난하니까 불쌍해서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방치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최소한 먹고 살게는 해주는 것이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낫다는 것이 밀턴 프리드먼의 초기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소득’ 정신은 공유부에 대한 권리이다. 부자들이 부를 축적한 것이 개인의 노력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두의 것인 토지와 자원 그리고 문화적 유산, 지식 등을 이용해서 얻은 부분도 있으니 그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다시 돌려주라는 생각이다.
기본소득은 가난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이재명 지사에게 부족해보인다. 그래서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이기보다 경제정책이다고 말하는 것이고, 부자만 못받으면 억울하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승민 전의원이 ‘공정소득’이라고 네이밍했는데 진짜 공정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몫은 각자가 갖고,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 진짜 ‘공정’ 아닐까?
근본적인 ‘공정’은 외면한 채,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기본소득 한다고 하니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을 마치 더 챙겨줄 수 있는 것처럼 나서는 것이 진짜 ‘공정’일까?
기본소득 논의 덕분에 ‘안심소득’도 ‘공정소득’도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는 더 강력해져야 한다. 호랑이를 그리려다보면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지 않느냐는 말처럼 기본소득 vs 공정소득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길 바란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일단 쥐를 잡는 것이 우선이니 최소한의 삶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물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 권리로서 보장되는 ‘기본소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