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초6 독서논술 수업일기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건 늘 흥미롭다. 오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첫 질문을 던졌다. “영웅도 안 나오는데 왜 제목에 ‘영웅’이 들어갔을까?”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생각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석대를 이야기했다. 몰락한 반장이니 제목에 맞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병태를 지목했다. 정의를 이루려다 좌절한 모습이 더 적합하다고 했다.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아이들의 말 속엔 자신만의 해석이 담겨 있었다. 그 해석이 어딘가 부족해 보이더라도, 나는 그것이 그들의 "시작"임을 알았다.
토론이 이어지며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석대의 리더십으로 흘렀다. 아이들은 석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학생을 이용해 반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현명한” 리더라고 말했다. 이때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꺼냈다. “군주는 사랑받기도, 두려움받기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철학자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이야기가 점차 현실과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과 비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왔고, 어떤 아이는 석대의 체제가 폭력적인 동시에 안정적이었다며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석대 같은 권력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잠시 침묵했다. 아마도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짓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교실, 혹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그런 석대의 흔적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침묵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책이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면,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책은 그래서 늘 좋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삶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가진 힘은 단순히 즐거움을 넘어서 우리의 사고를 넓혀주고,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데 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도 그랬다. 짧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 대화가 책 속 이야기를 넘어서 삶과 연결되었고, 그 속에서 나는 책 읽기의 본질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함께 나눈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그들이 책 속에서 찾은 질문과 대답은 분명 그들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