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약 4년이 넘게 텃밭을 일궈오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작물을 솎아주는 일'이라고 바로 답할 수 있다. 왜냐면, 이것이 나의 우유부단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내가 고치고 싶은 나의 성격 중에 하나라는 걸 항상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텃밭에 씨를 뿌리는 일(파종)은 재미있으면서도 어떨 땐 조금은 성가시기도 하다. 어떤 씨앗들, 예를 들어 콩씨앗은 콩알만 하고 호박씨도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하지만 대부분의 씨앗들, 당근, 파, 상추 등등은 좁쌀만큼 작아서 손가락으로 한 꼬집 잡으면 여러 개가 딸려 올라온다. 이 씨앗의 크기는 씨를 뿌릴 때 효율성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큰 씨앗들은 뿌릴 때 나중에 다 자랐을 때를 생각해서 여유를 두고 듬성듬성 심기가 아주 쉽다. 처음부터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주어 작물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되도록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씨앗들은 그렇게 하기에는 씨앗이 너무 작아서 일일이 하나하나씩 심어주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작은 씨앗들은 씨를 파놓은 골을 따라 한 꼬집씩 집어서 대충 솔솔 뿌려주듯 심어준다. 나중에 이 씨앗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빽빽하게 되면 그때 몇몇을 솎아주는 작업을 하여 적정 크기의 채소로 자라게끔 해준다.
여기에서 나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솎아주는 일. 그것은 선택의 문제와 직결된다. 어떤 것을 크도록 놔두고 어떤 것을 뽑아버릴 것인가? 잎이 큰 것을 놔둘까? 줄기가 작은 것들을 뽑을까? 몇 개를 남길까? 이런 고민들로 한참을 뒤적거리다 보면 하나도 뽑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버리기 일쑤다. 사실, 이미 잎이 나고 키가 자란 것들을 뽑아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 솎아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다. '나름 정성 들여 씨를 뿌리고 새싹이 날 때까지 물을 주고 가꾸었는데'라는 아쉬움에 머뭇거리게 된다. 나의 정성과 시간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기분이다.
오늘 비트를 수확하면서 평소의 나의 우유부단함으로는 결코 보지 못할 결과를 보았다. 봄에 빽빽하게 심은 비트, 올봄의 이상기온으로 작물들이 더디게 자라게 되면서 텃밭에 가면 할 일이 없어 그 나며 작게 올라온 비트잎을 솎아주곤 했다. 당연히 나의 의지라기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솎아준 셈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수확하고 보니, 아차 싶었다. 이제껏 수확한 비트 중에 가장 큰 비트가 아닌가.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튼실한 비트.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다 보면 하나도 잘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멀티태스킹이란 말도 있지만, 사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여러 가지를 다 잘해서 큰 결실을 맺기는 아주 힘들다.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나는 욕심이 많았고 뭐든 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성공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선택과 집중'이라는 건 나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집중'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선택'은 항상 '포기'를 동반하기에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었던 나는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어 '우유부단'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솎아주기'로 가장 튼실한 비트를 수확한 작년, '선택과 집중'의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성공할 수 없지만, 내가 진정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일은 나의 선택과 집중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어발처럼 많은 일들에 다리를 걸쳐놓고 다 잘되기를 바라다가 실패의 경험으로 여러 번의 좌절을 하기보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나 선택하고 그 하나에 집중한다면 성공의 확률이 훨씬 높아지리라.
욕심을 버리고 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핏빛 같은 짙은 색의 비트를 마음속에 하나 심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