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와 단호박
우리 텃밭 옆 이웃분은 우크라이나 분으로, 나는 텃밭에 갈 때마다 이 옆집 텃밭을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늦은 봄부터 우리는 주말마다 텃밭에 가곤 하는데 그 분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분의 텃밭은 여름이 되면 모든 작물들이 하나같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 많은 열매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와서 물 주고 거름 주고 부지런을 떠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텃밭은 이웃 텃밭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으로 보였다. 특히 부러운 것은, 튼튼한 지지대위에 널려있는 얼키설키 넓은 잎들과 대롱대롱 달린 포도송이들이었다. 그게 부러워서 우리 텃밭도 아닌데 사진을 요리조리 찍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이웃분과 마침내 마주쳤고 그분에게서 포도나무 가지를 하나 분양받는 행운을 얻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 포도나무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우리였다. 포도나무 식수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가지 하나를 그냥 땅에 푹 찔러 넣은 게 다였다. 무화과나무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 내버려 둔 포도나무에서 다음 해에 잎이 나고 가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운 좋은 일이 있다니. 또 다른 혜택은 우리 텃밭 가운데에 있는 보기 흉한 맨홀을 감추어 준다는 것. 포도 넝쿨이 자라서 맨홀을 덮어버리니 텃밭의 모양새도 한결 텃밭다워졌다.
텃밭에 씨를 뿌리는 봄이 되면 나는 늘 계획부터 짠다. 남편과 나는 뭔가를 정리하고 조직하는 점에서는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우리 둘의 이 같은 성격은 텃밭 계획에 있어서 다행히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여 텃밭의 계획도를 만들고 어디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를 표시한다. 이때 남편은 인터넷에서 작물들 간의 궁합을 일일이 찾아서 표로 만들고 이 궁합을 참고하여 함께 작물들을 심을 위치를 정한다. 특별한 증거(?)는 없으나 우리의 텃밭은 대체로 아주 성공적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공조는 효과적이라는 자평을 하곤 한다.
텃밭에 작물을 심는 간격은 나중에 이 작물들이 다 자랐을 때 얼마나 크게 자랄지를 미리 예상해서 정하는데 공간을 비워두거나 조금은 널찍하게 심기도 한다. 포도나무는 이제 텃밭 가운데 뿌리를 내린 상태이며 포도나무 넝쿨이 드리울 그림자를 감안하여 그 주변에는 작은 채소들을 심지 않았다. 올해는 포도나무 옆 자리에 단호박을 심었다. 사실 호박 종류는 넝쿨성이라서 포도나무처럼 지지대를 만들어 유인해 주면 되기 때문에 그림자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심어주었다.
8월로 들어서자 포도나무는 맨홀 위에 설치해 둔 사다리를 타고 무섭게 자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라나서 맨홀은 파릇파릇한 넓은 잎들로 덮여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호박도 처음엔 느리게 자라더니 날씨가 어느 정도 받쳐주니 폭발하듯 자라기 시작했다. 텃밭에 갈 때마다 나는 이 단호박의 줄기 방향을 포도나무와 겹치지 않게 틀어주곤 했다. '어? 단호박 줄기가 어디로 간 거지?' 어느 날 땅에는 단호박 열매만 있고 메인 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뿌리에서부터 굵은 줄기를 따라 한마디 한마디 따라가 보니 이 줄기의 마지막이 포도나무 넝쿨 속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포도나무 넝쿨을 삐집고 나와 커다라 잎들이 포도나무 잎인 척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서로 자라는데 방해가 될까 봐 매번 뻗어나가는 줄기의 방향을 틀어주었던 나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포도나무 잎들 사이의 호박잎이 마치 보호색으로 자신을 감춘 카멜레온을 연상시켜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렇게 정겹게 보일 수가 없었다.
저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일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 간의 교류가 차단되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의 눈으로 살피며 옆에 가기를 꺼려하는 시간을 지나온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어쩜 조금은 어색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코로나19의 영향이 아니어도 언제부턴가 세상은 아주 각박하게 변해가고 뭐든지 편을 나누어 거리를 두곤 한다. 자신의 곁을 조금씩만 내어주면 이렇게 어울려 함께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살 수 있는데...
5년 전인가 멕시코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푼 뒤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주변은 우리가 묵는 숙소같이 깨끗한 건물들이 많았고 거리도 깔끔하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좀 더 둘러보고자 숙소에서 벗어나 도로 쪽으로 향했고 도로에 있는 육교를 지나 건너편 마을로 들어섰다. 흠... 그런데 조금만 걸어가자 우리가 묵는 마을 풍경과는 달리 비포장의 흙길에 쓰레기들이 뒹굴고 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은 단층짜리 건물들이 나타났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살로 만들어진 대문들. 맨발로 축구를 하고 있는 소년들. 외국이라서 이국적인 장면이라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며 둘러보는 나의 눈빛이 창살같이 생긴 대문 안 방 안에서 밖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과 맞닿았던 그 순간이 난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의 호기심에 침해당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본의 아니게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저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기 싫어서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5시가 되자 우리 숙소 쪽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도로 위의 육교를 지나 저 건너편 마을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가 묵었던 곳은 부유층, 외국인들 또는 관광객들이 묵는 지역이고 건너편은 일반 서민들 (조금은 빈민층)이 사는 마을이며, 이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소들이 있는 지역의 근로자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숙소 지역의 집을 살만한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도로를 경계로 빈부가 나뉘어 있는 게 이 멕시코만의 일은 아닐 텐데. 이 지역으로의 여행 이후 나는 조금은 낙후된 지역으로의 여행이 꺼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 부자도 아니지만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게 미안하면서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포도넝쿨과 단호박의 이 스위트한 동거의 모습은 선을 그은 마냥 도로를 경계로 나뉜 부유층과 빈민층의 멕시코의 한 지역을 떠올리게 했고 지금도 거긴 변화가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잠시 우울해진다. 멕시코의 예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뉴스에서 부유한 아파트와 그 옆에 소위 싼 아파트의 입주민들 사이에 잦은 마찰이 생긴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주공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고가 아파트 지역을 가로질러 학교를 가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고가 아파트 입주민들의 불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아파트 평수나 사는 동네에 따라 또래 집단이 형성되고 일찌감치 서로를 다른 부류라 생각하게 하는 현실이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캐나다의 이민정책이 미국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미국은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보다는 '미국'이라는 이름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화를 통합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melting pot' 정책이라고 일컫는다고. 그러나 캐나다는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면서 다른 이민자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추구하는 이민자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소위 'mosaic' 정책이다.
나는 이 캐나다의 정책이 더욱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갖추면서 함께 사는 것. 포도나무가 자신의 넝쿨 사이로 자라는 단호박과 서로 엉켜 자라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타인과 몸을 부대끼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녕 단호박과 포도가 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