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맛보거나 보지 못한 게 있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처음 먹어본 게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무화과'다. 사실, 들어는 봤다. 또 유명한 노래 가사에도 등장하지 않는가. '그대여, 이렇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그대여 이렇게 무화가가 익어가는 날에도~~' 하지만, 실제로 무화과를 실물로 본 적이 없었고 또한 먹어본 적도 없었다. 마른 무화과조차도... 캐나다에 와서 이렇게 우리 텃밭에서 무화과를 맛볼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무화과의 첫인상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그 생김새가 조금은 낯설고 이상해서였다. 외양은 매끈한 것이 예쁘지만 반을 잘라 속을 보면 어디 SF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이 촉수가 여러 개 있는 우주 생명체 같다는 게 무화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 그래서 선뜻 먹어보겠다고 손을 내밀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하지만, 눈 질끈 감고 한 잎 베어무는 순간 입안은 설탕 축제라도 벌어진 듯 달콤한 맛이 폭발했다. 이때부터 무화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텃밭 이웃분이 주신 나뭇가지 하나를 땅에 푹하고 찔러 심은 후 약 4년이 지나자 무화과나무의 성장속도가 아주 빨라졌고, 나즈막했던 나무의 키가 내 키를 훌쩍 넘기더니 나뭇가지 끝에 달린 무화과를 따기 위해서 사다리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자라 버렸다. 그제야 우리가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웃분에게도 물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해서 무화과나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관리면에서나 수확면에서나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의 키를 키우지 않고 낮게 키우는 것. 사람의 손이 뻗을 수 있을 만큼만 자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의 무화과나무가 너무 커버렸다. 이미 자랄 대로 자란 큰 나무를 낮게 키우기 위해서는 나무를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약 4년여 동안 키운, 그것도 몸집이 굵어진 나무를 싹둑 잘라야 한다니.
결단의 순간이 왔다. 나무는 다시 자란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가지치기'의 단계를 넘어 거의 '벌목'에 가까운 거라 결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깊게 한 숨을 고르고 우리가 원하는 멋진 모양의 무화과나무를 기대하며 나무의 몸통 아래쪽을 과감하게 잘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내 다리 하나가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모든 게 끝나버린 것 같았다. 봄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허망함도 잠시, 기쁜 소식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개월이 지나고 5월이 되자 아무것도 자랄 것 같지 않던 나무에 파릇한 새순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나오려고 준비한 건지 어디로 나오려고 준비한 건지...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몸통의 2/3가 잘려나간 날,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다시 자라니 걱정 말라'는 사람들의 희망의 말들도 거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희망이 현실로 다가왔다. 새순들은 아주 빠르게 자라나 멋진 가지를 만들고 풍성한 잎을 내어주었다. 흉한 몸통을 가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잎들과 가지들로 메꿔졌다. 수확은 꿈꾸지 않았다. 그건 큰 욕심이었다. 단지 이렇게 자라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겨울이 왔고 잎은 떨어졌지만, 가지들은 풍성하게 남았다. 많은 희망이 그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살면서 아직 큰 좌절을 맛본 기억은 없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렇다고 고민 없이 걱정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맞나?' 하는 의구심은 항상 마음을 어지럽히고 불안하게 했다. 흔히 말하는 '결혼 적정기'를 넘기고 나이 많은 싱글녀로 지낼 때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캐나다인과 결혼을 했을 때에도, 혼자되신 엄마를 두고, 조카 바보였던 이모의 역할을 미뤄두고, 승진을 몇 년 앞둔 회사에 휴직을 하고 캐나다로 올 때에도 항상 불안함은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감도 당연히 컸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적정 궤도에서 벗어나버렸다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내가 지금껏 보고 살아온 삶이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걸어가는 그런 삶.
하지만, 완전히 잘린 무화과나무에서 새 순이 나오는 걸 본 순간 다른 길이 보였다.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막막함. 무화과나무가 잘리던 날 느꼈던 '절단된 기분'. 무화과나무도 그랬겠지. '이제 끝이구나.' 그러나 몇 달 뒤 전혀 다른 자리에 새로운 순을 내고 있는 무화과는 다른 말을 들려주었다.
'이 길이 아니면 어때? 다른 길로 가면 되지. 삶의 길은 하나가 아니야. 네가 가면 그 길이 너만의 새로운 길이 되는 거야. 삶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그것만이 길이 아니야.'
이제 무화과나무의 새 나뭇가지들은 아랫부분에서 나와 내 키만큼 자랐다. 손이 닿지 않았던 이전의 가지들과는 달리 손만 뻗으면 모든 가지들과 잎들에 닿을 수 있어 관리하기도 쉽고 수확할 때에도 수월해질 것이다. 키 큰 무화과나무에서 나즈막한 나무가 되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여기저기 다른 부위에서 자라 나온 새로운 나뭇가지들도 각자의 새로운 삶의 길을 가고 있겠지. 너도 나도 각자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비교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올해 무화과는 더욱 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