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다 6화
오늘은 서울을 떠나온 지 58일 되는 날이다. 지나가버린 쉰여덟 번의 하루는 모두 같은 박자로 흘러갔을 테지만 내게 있어서 어떤 날들은 그 순간을 다 누리기도 전에 흘러가버렸고 또 어떤 날들은 지루하리만큼 흘러가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붙잡고 싶었던 날들을 떠올려보자. 사촌동생들과 보냈던 날들, 니스에서 형, 누나들과 보냈던 날들, 독일 시골에서 집 지으며 보냈던 날들 모두 지나고 보니 더욱이 보내기엔 아쉬운 날들이었다. 먼 곳에 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찾게 해 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던 날들이었다. 오로지 행복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날들이다. 하지만 23살 3월에 느꼈던 행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한편으로 밀려오는 아쉬움만을 되새김한다.
반면에 고작 하루라도 정말 괴로웠던 날들도 있었다. 사촌 동생들을 떠나보낸 후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에 앉아 멍 때렸던 시간이 떠오른다. 등짝에 메고 있는 생존 배낭과 두 손에 쥐고 있던 아이폰과 지갑 오직 이것들로 다시 혼자가 되어 3달을 혼자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쌓았던 추억들과 혼자되었다는 외로움이 동시에 몰려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 하고 떠나온 여행이지만 온갖 설렘은 사라지고 우울함만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은 하늘도 내 감정도 참 어두웠던 날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는 답답함에 담배라도 입에 물어보았다. 잘 될 리 없었다. 패기 부리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한없이 약해져 가는 내 모습만 보였다. 나는 두려움에 쩔어 모든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틀 전만 해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거리를 걷던 나였는데 이젠 말조차 소심하게 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있다가는 모든 것을 망칠 듯싶어 도망치듯 파리를 떠났었다.
3월 중순 다시 혼자가 되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도 그랬다. 그땐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말에 짜증이 날 정도로 무기력한 날이었다. 여행에 대한 감흥이 줄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그날은 13시간을 잤는데도 피곤함에 일어나질 못했다. 저녁에 배가 고파 집 앞 마트를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깨어 있을 땐 예산 생각과 외롭다는 감정에 빠져 하루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고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아까웠고 앞으로의 날들이 막막하기만 했다.
외로움은 아프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가는 차치 하더라도 내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 한 명 없다는 현실은 내가 처한 문제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돌아보니 나는 그 외로움을 극복하며 온 것이 아니라 누구를 만나고 어디로 떠나고 하며 애써 외로움을 피한 것이 아닐까? 또다시 외로움이 찾아온다면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절망하고 있진 않을까? 나뿐만 아니라 또 누군가도 이런 아픔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을까?
영국이 국민들의 외로움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를 만들고 일본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건 꽤나 알려진 것이다. 두 사례로만 비춰봐도 외로움은 이제 결코 얕볼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 얘기하는 즐거움보다 소셜 미디어 좋아요와 그 댓글에 더 큰 희열을 느끼고 밥상머리에서 우리도 모르게 유튜브를 꺼내 보는 우리 세대는 어떻게 외로움을 이겨내야 할까. 결국 이것도 사람과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을 잘 못하더라도 “같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 한마디 뱉는 용기가 필요한 오늘 아닐까.
알고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를 지나 뉘른베르크에서 김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