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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찬 Sep 10. 2023

수능과 편도티켓

이렇게 산다 7화

                       

프랑스 파리, 2023년 2월 





나는 비겁했다. 나는 사사로웠고 못난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러나 진정 못난 것은 못 난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결과로 먹고살았다. 돌이켜보니 내 어린 시절 자존감 아니 자신감은 대부분 학교 성적에서 비롯되었다. 사수생이던 작년 가을 어느 저녁에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뒷받침하던 것은 어떠한 모습이든 스스로를 수긍할 수 있는 자존감이 아니었다. ‘내가 너보다 무엇을 잘해 혹은 더 나아.’하고 생각하는 비교우위, 곧 자신감이었다. 비교우위로 다져진 뒷받침은 나보다 잘난 존재를 맞닥뜨릴 때 무너지고 만다. 


수능 시험을 거듭할수록 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힘들었다. 동전을 뒤집은 듯 갖고 있던 자신감만큼 열등감이 서서히 몰려온 것이다. 그러다 쌓아온 명예, 부렸던 허세 그 모든 거품이 마른날이 그날 저녁이었다. 변비로 고생하다가 ‘또옹’하고 쏟아내는 듯한 조그만 감촉이 스쳤다. 어렸던 내가 바라던 이십 대 초반과 멀어진 지금 내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시금 나를 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나의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무엇을 잘하고 못할까. 언제 대담하고 비겁할까. 무엇에 기뻐하며 무엇을 두려워할까. 더할 나위 없이 나는 언제 행복한 존재일까. 질문이 쏟아지자 곧바로 대답이 흘렀다. 하지만 부족했다. 더 구체적이고 어쩌면 잔인하기까지 할 진실된 내 모습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욕망이 모여 배낭여행을 떠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각자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이 다. 여행은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당시 내게 여행은 최 고의 길이었다. 수험생 시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을 모두 챙겨 2월 말 파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 열흘 동안 함께했던 사촌동생들이 귀국 비행기에 오르자 그 제야 편도 티켓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왜 여행하는가? 즐기고 있는가? 오늘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함께한 동생들이 떠나자 상실감을 맛봤고 혼자였기 때문에 불안하고 막막했다. 이전에 누 려보지 못한 자유를 선택한 대가였다. 파리의 하늘은 우중충했다. 나는 호스텔 안에 있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 배가 고프면 빵집으로 향했다. 사흘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자 비용을 다 치른 것인지 생각이 바뀌었다. 돌아간 그들과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은 아니며 이번 작 별이 우리를 성숙하게 할 것이었다. 그렇게 상실감은 사라졌다. 두려움은 기대로 바뀌었다. 혼자 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었다. 




모든 사람은 편도 티켓을 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티켓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그 쓰임을 다했다. 이곳에 도착했을 뿐, 무엇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단지 해야 할 일은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매 순간 선택하고 즐기고 책임지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편도 티켓이 던진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즐기고 있는가?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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