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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찬 Sep 10. 2023

자유를 누리고 그 사이 퀘렌시아

이렇게 산다 11화

                   

일본 오사카, 2023년 7월 


7월 19일, 자비 없는 태양은 온 오사카를 내리쬐었다. 그 유명한 글리코맨을 등지고 대로 를 따라 걷다가 뒷골목으로 몸을 돌렸다. 얼마 전에 들어선 듯한 프랜차이즈 옷 가게 옆으로 나무로 지은 오래된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식당들 사이에 껴 존재감 없이 자리를 지 키고 잇는 작은 카페 문을 열었다.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노부부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랏 샤이마세-”하고 나를 맞았다. 노란 구식 전등과 짙은 나무색 가구로 가득한 열 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담배 연기가 느리게 흘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어 제도 왔던 나를 기억하는 듯 코를 살짝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아이스 코히, 슈가 오케 이.”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어제와 같이 1인석 자리에 앉았다. “아이스데스-” 아주머니 목소리에 주인아저씨는 냉장고에서 이미 만들어 둔 커피를 꺼내 얼음이 담긴 유리컵에 따랐다. 배낭에서 작업 공책과 헤밍웨이가 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꺼냈다. CABIN 85 MILD라고 적힌 하얀 재떨이와 설탕통을 옆으로 살짝 치우고 공책을 펼쳤다. 오늘 새벽 캡슐 호스텔에서 쓰다 만 글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 나는 호스텔 일을 끝내고 글을 쓰러 집 근처 카페에 갔다. 나는 여행 기를 쓰다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친구들의 소식을 훑다가 한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 친구가 최근 외국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였다. 날짜를 보니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친구의 글에 동기부여를 받아 스카이스캐너에서 다음 날 오사카행 비행기를 찾았다. 왕복 30만 원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번 아르바이트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한 호텔 에이전시에 들어가 호스텔을 찾았다. 오사카 시내 근처에서 10만 원으로 3 박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했다. 지금 내게는 퀘렌시아가 필요했다. 퀘렌시아는 일 상에서 쌓인 피로를 털 수 있는 나다운 모든 행위와 공간을 뜻한다. 류시화 시인은 말했다. “막힌 숨을 트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생의 에너지가 마르고 생각이 거칠어진 다. 그 휴식이 없으면 생명 활동의 원천이 바닥난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몸이 우리에 게 말해 준다. 퀘렌시아가 필요한 시간임을.” 한국에 돌아와 줄곧 등록금을 생각하느라 지 쳐 있던 나였다. 퀘렌시아를 잊지 말고 살고자 팔에 새겨 넣지 않았던가. 다음 날 나는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내 선택들이 쌓여 나다워진다. 내 선택들을 둘러싼 내 사연들은 가을 나무 낙엽처럼 삶에 바람이 불어오면 쉽게 날아간다. 하지만 내가 하는 선택들, 내가 뱉는 말들은 그 어 떤 바람이 불어와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킨다. 바람이 언제 불어올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내 선택들이 쌓여 경향성을 띨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알아차린다. 나는 오늘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선택하고 책임을 질 때 행복하다. 어김없이 불안할 내일도 모 레도 마찬가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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