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는 1879년 [진보와 빈곤]의 책을 발행한다. 이유는 아래와 같은 이유이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증기기관으로 인해 엄청난 생산력으로 부가 증가하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부는 가난을 근절하거나 노동자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노동자에게는 부담을 덜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엄청난 생산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진보와 빈곤]의 책을 썼다. 즉 헨리 조지는 부가 늘어남과 동시에 빈곤도 증가하는 현상의 법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19세기의 미국 상황과 21세기 한국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부는 증가하였지만, 부자의 부는 증가한 반면, 가난한 자의 부는 증가하지 않았다. 빈부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는 요즘 다시 읽은 [진보와 빈곤]은 헨리 조지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토지 사유제 폐지, 토지 가치세 부과 등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진보와 빈곤]은 여백이 거의 없는 636페이지로 총 10권 6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의 정치 경제학은 부의 증가가 빈곤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인간의 심층적 지식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은 적절한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정치경제학이 내세운 잘못된 전제 사항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책을 읽고 각 권별로 내용을 정리해 보고 나의 생각을 덧붙여본다.
1권 임금과 자본
용어 정리를 먼저 하면, 생산의 3대 요소인 임금, 자본, 토지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임금은 "어떤 종류의 노동인지 혹은 그 보상이 고용주에게서 나오는지 아닌지 등은 따지지 않고, 노동을 투입하여 받은 대가"이며 자본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투입된 부를 가리킨다". 토지는 "물과 공기와 구분되는 지상의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몸 밖에 있는 모든 물질적 세상을 가리킨다"
임금은 자본과 임금의 비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대가인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
정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부라는 용어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가의 노력이 들어가고, 이동되고, 종합되고, 분리되고, 혹은 다른 방식으로 가미된 자연의 생산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의 증가는 구체적 사물들,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 가치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자본은
"부의 일부, 즉 생산을 돕기 위해 투입된 부"이다. 따라서 모든 자본은 부이지만 부는 곧 자본은 아니다.
헨리 조지는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대가로 주어지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직접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본은 임금을 선불해 주지도 않고 노동자의 생계비를 제공해 주지도 않는다. 자본의 기능은 도구나 씨앗 등으로 생산과정 중의 노동을 돕는 것이며,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요한 부를 제공하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제2권 인구와 식량
헨리 조지는 멜서스의 [인구론]을 반박하였다."[인구론]의 집필 목적은 기존의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제도 탓이 아니라 창조주의 법칙으로 돌림으로써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멜서스의 [인구론]의 요지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인구 조절에 실패하면 결국 세상은 죄악과 궁핍으로 빠진다는 논리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멜서스의 [인구론]은 헨리 조지가 그랬듯이 순환논법으로 억지 주장이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반면, 식량은 토지의 면적과 상관없이 생산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는 특정 나라의 토지가 그 나라의 인구를 부양하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지주들의 높은 지대 때문에 가난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인구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 탓이라고 하였다.
현재도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지주 혹은 건물주는 부자이며, 지대를 내는 사람과 임대료를 내는 사람은 가난한 현실에 19세기의 상황과 현재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랍다.
제3권 분배의 법칙
"생산물=지대+임금+이자" 이지만 지대가 초과 생산물을 가져가면
즉, "생산물-지대 = 임금+이자"의 등식이 되면 임금은 상승하지 않는다.
헨리 조지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자의 개념과 다르게 생각한단 것에 놀라웠다.
이자는 돈을 사용하고 이자를 지불하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빌려 간 사람이 자본을 증가시킬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서 이자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헨리 조지는 임금 기금설(자본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임금이 나온다는 학설)은 오류라고 하였다.
그는 "임금은 생산의 한계에 달려있다. 혹은 지대를 지불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노동을 투입할 수 있는 자연 생산력의 최고점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라고 하였다. 즉 지대를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이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최고의 생산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생산물-지대 = 임금+이자"의 등식에서 물질적 진보가 계속되어도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지대의 상승, 토지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임금을 고정 비용으로 둔다. 회사가 조금만 어려워도 고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임금 동결이나 심하면 임금 삭감까지 한다. 하지만 회사의 매출이 다시 증가하여도 그 동결 혹은 삭감된 임금은 다시 상승하기가 힘들어진다. 19세기의 지대가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지대는 주주들의 배당금이 아닐까. 주주 가치 우선주의가 만연한 지금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목소리는 낮다. 회사는 성장하여도 직원의 월급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미 19세기 헨리 조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노동생산성에 의해서 임금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4권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헨리 조지는 멜서스의 [인구론]을 반박하였다.
인구증가와 기술 진보에 따른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 살펴본다.
인구는 노동생산성을 향상한다. 즉 100명의 노동자가 1명의 노동자의 생산량의 100배 보다 더 큰 생산량을 산출한다. 그러나 인구 증가는 지대를 높이고 임금을 낮춘다.
기술 개선은 노동의 시간과 노동의 양을 감소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일부를 해고하여 그들에게 생산의 몫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 새로운 공법, 기발한 아이디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직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회사를 위한 새로움이 아닌가.
헨리 조지는 "인구가 증가하지 않더라도, 기술 개선은 생산물의 더 많은 부분을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가게 하는 반면, 노동과 자본에는 더 작은 부분만 돌아가게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제5권 문제의 해결
헨리 조지는 생산력이 증가하는 데도 불고하고 임금은 최저 생계 수준으로 꾸준히 하락해 왔던 이유를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지대가 전보다 더 큰 폭으로 올라갔고 그 결과 꾸준히 임금을 인하시켜왔기 때문이다."
부가 증가하는데도 토지의 개인 소유 때문에 생산성의 향상은 지대를 높여 부자만 부자가 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제6권 해결책
헨리 조지는 토지가 독점되어 있는 한 빈곤이 없어지고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빈곤 퇴치의 근본 원인인 토지 사유제를 폐지하고 토지 공유제를 주장한다.
제7권 해결책의 정당성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제가 정당하지 않음을 살펴본다. 가난의 원인이 자연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불의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 사유제는 자유와 평등을 침해한다.
제8권 해결책의 적용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제가 정당하지 않음을 살펴본다. 가난의 원인이 자연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불의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 사유제는 자유와 평등을 침해한다.
모든 토지를 몰수를 한 다음 토지 공유제로 하면 2가지의 난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현재의 관습과 사고방식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둘째, 정부 기구를 불필요하게 확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토지의 선용을 위해서는 토지사유제가 아니라 개선된 시설에 대한 안전보안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 것이 토지 사유제를 토지 공유제로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땅주인에게는 껍데기를 가지고 정부는 알맹이를 가진다는 논리이다.
토지를 몰수하는 대신 토지에 대한 지대를 환수한다는 해결책이다. 즉, 토지 가치세에 대한 이야기다. 조세로 토지 사유제를 공공용도로 전환하면 부의 생산을 촉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헨리 조지는 간접세를 폐지하고 오로지 토지가치세에 대한 단일 세금을 주장한다. 토지를 몰수하지 않고 토지 공유제 와 같은 효과를 내는 토지 가치세에는 지금 생각해도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간접세를 폐지하고 오로지 토지에 대한 유일 세금만 징수하는 것은 19세기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제9권 해결책의 효과
헨리 조지는 토지 가치세의 효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 구조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
모든 지대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면 모든 불평등은 사라진다고 하였다. 너무 유토피아적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지대를 공공의 목적인 토지가치세로 하면 토지 사유제는 폐지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 토지세가 있지만 토지 사유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헨리 조지가 말한 공평한 분배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헨리 조지가 말하는 공평한 분배는 "각 개인이 공동 재고에 기여한 근면, 기술, 지식, 근검절약 등의 정도에 따라서 분배되는 것이다. 부의 공평하고 평등한 분배가 사회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하였지만, 아직 부의 분배는 공정하지 않다. 19세기에 직면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지만, 2세기가 지난 지금 또다시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기득권의 놓지 않는 구조적 권력으로 인해 가난한 자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이 세상에 희망이 불씨를 쏘아 올릴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