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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읽기 싫어졌다.
매일 독서를 하고부터 독서 장르에 대한 편식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주로 읽는 분야는 인문, 정치/경제를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찾아서 읽지 않는 분야는 자기 계발, 에세이인 것 같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서평단 활동을 하고부터는 에세이를 강제적으로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에세이라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에세이를 읽었을 때 공감과 감동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많은 책에서 보았던 내용들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신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각자 처한 상황이 가장 심각하고, 각자 겪는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이라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나 자신은 또 어떠한지 생각해보았더라면, 그와 같은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미 많은 경험과 삶의 내용들을 알아서 내가 못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다.
그래서 몇몇 유명하다는 에세 이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았다. 그 책들은 내용이 좋아 포스트잇이 넘쳐흐를 만큼 공감과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주관적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에세이라는 장르가 맞지 않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몇 책이 문제였다.
요즘은 과거에 비교하여 자비출판, 독립출판, 펀딩을 통한 출판, 1인 출판 등 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고 있다. 그리고 가장 쉽고 많이 글을 쓰는 분야야 에세인 건 부인할 수 없다. 큰 출판사에서 픽 한 저자의 책이 모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책 쓰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들 사이에 출판의 질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출판되기 전 또는 출판되는 시점에 서평단을 한다는 건 이 책의 가치를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판단을 근거로 서평을 남긴다. 고정 서포터즈로써 읽는 책, 읽고 싶어서 서평단을 신청한 책, 저자나 출판사가 내게 의뢰해서 읽는 책 등 여러 가지 책을 읽는 경로가 있다.
그래서 세세하게 그 책들이 나와 맞는 책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미 여러 사람을 검증을 마친 책들을 읽었을 때와는 다르다. 그 책들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역할을 나 스스로 자청해서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탓할 수도 없다. 당연히 생각지도 못한 발상과 상상력으로 좋은 책을 읽고 좋았던 적도 많다. 그러나 굳이 왜 썼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도 있었다. 서평단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장점은 여러 장르의 책을 고루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독서 장르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나로서는 이 장점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단점은 책을 나를 위해서 읽어야 하는데 누군가를 위하 읽어 줘야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출판사마다 출판하는 책의 종류가 다양한 출판사가 있는 반면, 특정 분야의 책만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다. 지난달 에세이를 읽었는데, 감정풀이의 에세이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완독 후 서평을 남겼다.
그런데 이번 달에도 읽어줘야 하는 책이 에세이다. 역시 감정풀이 에세이다. 내가 미쳐 그 출판사의 출판 장르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구나 고민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칫 감정풀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략해버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긍정을 부정하면 긍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남지만, 부정을 부정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에 남는다.
요즘 읽었던 에세이는 감정풀이가 많았다. 에세이 중에서도 장르가 다양했으면 하는데 하필 내가 읽었던 책들은 감정풀이가 많았다.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전반적으로 우울했다. 내가 그와 같은 감정에 놓이지 않는 이상 공감할 거리가 멀어진다. 책을 읽고 나서, 싫은 것. 나쁜 것. 안 좋았던 것을 극복, 극복, 해결, 해결... 결국엔 싫은 것, 나쁜 것, 안 좋았던 것 만 머릿속에 남았다. 모든 책에 삶에 희망을 주고, 직, 간접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난 희망적인, 가치 있는, 그리고 긍정적인 내용의 에세이를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