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작년에 출간되었지만 지난달에 야 비로소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다. 항상 하듯이 독서 후 나만의 독서 노트에 독서요약, 인용, 서평 등을 남기고 있다. 읽은 날짜를 보니 7월 24일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독서 서평을 남긴다는 게 항상 조심스럽다. 저자와 내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가 있고, 잘못 받아 들일수 있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브런치의 매거진 [책 상]을 만들어 예전에 적어 놓은 독서노트를 정리하면서 하나씩 글을 남겨보려고 하였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독서노트에 남겨진 글의 수에 비하면 매거진[책 상]에는 몇 개 남기지 못하고 있다. 브런치에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서 독서노트를 보니 내용이 부족한 부분도 조금은 있어고, 그때의 트렌드와 지금과 다른 부분도 있고,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글을 남기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전업작가가 아닌 입장에서 출간 작가의 글을 평가한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하고 싶은 말은 남기고 싶다.
보통 다른 독자들도 하듯이 필자는 책의 본문을 읽기 전에 저자의 약력, 인트로, 목차를 보면서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먼저 파악한 후 본문을 읽어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책을 읽을 때 모든 것을 띄어 넘고 그냥 본문부터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저자가 누구인지, 성별 또한 알지 못했다.
저자가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 밀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하였다. 차별이 의식적으로 해서 차별이 아니라, 스스로가 무의식 중에 내재된 것이 표현될 때 상대방은 그 차별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나 또한 선량한 차별주의자인가 스스로 질문도 해보았지만, 내가 그와 같은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는 그 상대방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면 스스로가 선량한 시민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 마야 안젤루 가 한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저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차별 없이 말한다고 했지만 차별이 느껴지게 되는 건 왜 그런 건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편하게 읽고 싶었지만 책장이 넘겨짐이 많아질수록 남자가 아닌 휴먼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이해 하기에 모모한 면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책의 제목과 분량으로 파악하기로는 책의 주제와 내용이 무겁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책의 분량과는 다르게 읽으면서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자 점점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느려졌다. 필자의 마음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틀릴 수 있는 [구성의 오류]가 몇 가지 발견되어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문득 저자의 성별을 생각하게 되었고, 책장을 덮고 저자의 약력을 처음으로 보고 싶었다. 여성이 아닌 휴먼 입장에서 내용을 다듬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로 글의 내용 중에 [더치 패이 논쟁]은 이해하기도 논리력도 부족했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상태에서는 일방적으로 한 집단이 경제적 부담을 질 이유가 없다". 남녀 간의 더치페이 논쟁은 남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더치페이를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즉 남녀 간의 임금 차이로 인해, 한 집단(남성)은 경제적 부담을 질 이유가 있다는 논리로 귀속된다. 평등과 경제적 입장에서의 [더치 패이]를 논한다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 남성이 여성에게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부터가 잘못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저자는 말한다. "여성이 많은 직업은 여성이 많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하였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동일 경력의 남성, 여성을 비교하여 임금의 차이에 대해서 말한다면, 여성이 충분히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많은 직업이라고 하여 단지 그 이유 만으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가치(임금)는 그 회사의 사업구조와 수익성과의 연관성을 배제한 체 성별의 문제 때문에 노동의 가치에 비례하지 않는 임금을 받는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