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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때론 신선놀음도 필요해

화천의 곡운구곡으로 달구경을 나갔다. 날짜도 보름달이 뜨는 날로 잡았다. 막걸리며 메밀 전이며 놀이할 재료들을 들고 신선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해 질 녘에 도착해 시작된 신선놀음은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곡운구곡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수증 선생이 이름을 지었다. 화천군 사내면에 거주하던 당시 자신의 호 ‘곡운’을 지촌천의 물굽이 아홉 개에 붙여 만든 것이다. 우리가 신선 흉내를 낸 곳은 곡운구곡 중 가장 경관이 뛰어난 제4곡 ‘백운담’이었다. 흰 구름이 머물고, 물안개가 구름처럼 피어나는 절경 앞에서 달 맞을 채비하길 30여 분이 지났을까. 산과 산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달님에게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발 빠른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모닥불이 피어나고, 노랫가락이 나오고, 웃음꽃이 피었다. 소박한 사람들의 흥취에 달 밝은 보름밤은 속절없이 깊어만 갔다.      


부래산 전설을 품고 있는 고산(孤山)은 춘천시 서면에 있는 99m 높이의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소양 8경 중 하나이다. 매월당 김시습도, 출옹 이주도 고산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겼으니 그 풍광이 얼마나 돋보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고산 꼭대기에 한 번 올라서서 / 빙 둘러보니 혼자만이 아니어라

산들은 비단 병풍처럼 둘러싸고 / 거울 같은 두 강물을 끼고 있네

성긴 빗방울은 내리다 그쳤다가 / 해 기울어 반쯤 산 넘어서 가네

겨드랑이에 저절로 날개 돋으니 /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주李胄(1468~1504) ‘고산대’

출처; 허준구의 춘천 100경- 고산 해넘이 < 봄내 2021년 12월 게재 >   

  

친한 이웃들과 옛 선비인 양 고산낙조를 즐기고 싶었다. 때를 기다리던 어느 날 답사 차 고산에 올랐는데 아뿔싸! 우거진 덤불이 내 키를 넘은 채 가로막고 있었다. 낙조는커녕 깨금발을 들어야 물 구경이 가능했고, 날벌레들로 숨 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고산을 너무 홀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매강의 물은 변함없이 흐르는데 고산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고산이 아니었다. 무관심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좋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탔다. ‘북한강 자전거길’을 돌다가 고산을 눈앞에 두고 물 건너에서 해넘이를 만났다. 눈이 부셔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이 해넘이를 고산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싶어 안타까웠다.

어지러운 상념 속에 신음하는 고산이 들어가 있다. 언론 보도로 접했던 고산 일대의 개발 소식이 조만간 실행 소식으로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고산이 고산다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경주 남산을 다시 걸은 것은 깊은 밤이었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님의 해설이 곁들여진 의미 있는 달빛 탐방. 이 길 떠남은 예전에 삼릉계곡에서 용장골까지를 대낮에 탐방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는 용장골 삼층석탑을 바라보며 산 자체를 기단으로 활용한 신라 석공의 눈썰미에 감탄했었다. 아기 돌부처의 그윽하고 편안한 미소가 닮고 싶었고, 석불과 석탑들이 내 마음의 갈등을 잠재워주길 기도하기도 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인위적인 불빛 한 점 없이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의지해 걸었다. 삼라만상이 잠든 듯 고요함이 이어졌고, 교교함은 마치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접근 통제로 먼발치에서만 보아야 했던 불교문화 유적을 코앞에 놓고 보다니. 전문가의 해설을 달빛을 등불 삼아 보고 듣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무형문화재 이생강 선생의 기능 이수자인 이성애 선생의 대금산조 연주도 특별했다. 남산 중턱에서 듣는 달 밝은 밤의 대금소리에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신라 천년의 영화와 함께 마음에 젖어들었다.  

경주 남산은 산 자체가 불교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다. 신라의 번성을 경주에서 찾는다면 남산에서는 신라인들의 종교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가끔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무념무상에 빠진다. 자아도취이다.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된 이후 큰 걱정거리는 없어졌다. 신경 써야 할 자잘한 것들은 지속적으로 생기지만 그런 것까지 걱정을 하면 세상 살 맛이 안 난다. 무신경해지려고 마음을 다스림은 그런 까닭이다.

마음 맞는 이웃과 신선놀음하듯이 시간을 공유하고, 은퇴 후의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지금이 즐겁다. 이만하면 됐다. 이솝 우화 『금도끼 은도끼』의 나무꾼처럼 욕심내지 않고 생활하련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언제든 다시 또 좋은 날 좋은 때가 오면 새로운 길을 찾아 걸을 것이고, 물아일체인 듯 무념무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나는 인간 세상을 물 흐르듯이 고요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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