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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강원도가 그렇게 춥다고?

한겨울이 되면 연어도 아니면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춘천의 구곡폭포에서 빙벽등반을 하는 이들이다. 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물이 강추위로 얼어붙으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목표는 단 하나, 얼어붙은 폭포의 꼭대기까지 네 발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추위가 반갑다. 겨울 추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있다. 사북면 지촌천에서 얼음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강물이 꽁꽁 얼면 드릴로 구멍을 뚫고 빙어 낚시를 한다. 개중에는 두껍게 언 얼음 위에 텐트를 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곤 캠핑 온 것처럼 가족이 모여 앉아 얼음 구멍을 가운데 두고 낚시질을 하며 즐긴다. 춘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다른 지역보다 추운 편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주민들은 가장 먼저 차의 타이어를 겨울용으로 교체한다. 동장군에 대비해 겨울을 날 채비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 따뜻한 남쪽의 동무들은 이런 겨울 문화를 신기해했다. 지금까지 겨울용 타이어로 갈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도 했다. 이들을 춘천으로 초대했다.

“아니, 무슨 가방이 이렇게 커?”

“생전 입지도 않던 내복까지 넣었더니......”

그들은 추위에 대비한다며 헤비다운을 입었고 내복을 챙겨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포근한 날이 계속 이어졌다. 내복은 가방에서 나오지 못했고 동무들은 아쉬워했다. 스키장에 딸린 콘도를 숙소로 잡았건만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는 맛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겨울 산은 은근한 설렘이 있어 해마다 태백산을 다녀온다. 이번에 밟은 태백산은 자연의 변화무쌍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바람이 몰고 온 빗줄기가 출발부터 우중 산행을 시키더니, 산 중턱부터 날린 눈발은 겨울 산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장군봉을 지날 때는 몽환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안개에 묻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겨울 산의 볼거리는  상고대에 맞설 상대가 없다. 주목 군락지에서 만난 상고대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겨울마다 보아온 풍경이건만 어쩜 이리도 매번 다르게 보일까. 무거웠던 어깨가 가뿐해지고 입에선 연신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눈발은 만항재에서 심술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힘없는 차들을 돌아서게 만들었고, 사륜구동 차에 겨울 타이어를 장착한 우리 차는 제설차를 앞세우고 꼬불꼬불 아슬아슬하게 재를 넘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 나타났다. 만항재 너머 마을엔 작은 집들이 야생화 그림을 입고 있었다. 야생화 축제를 하는 ‘만항 야생화마을’은 새로 발견한 보물이었다.  

   

철원의 ‘한탄강 물윗길’과 ‘주상절리길’ 잔도는 또 어떠한가. 겨울에는 한탄강 위를 걷는 얼음 트레킹도 멋지지만, 부교를 이용해 강물 위를 걷고, 잔도를 이용해 벼랑길을 걷는 재미를 맛보아야 한다. 옛 승일교를 지나갈 때는 고개를 들어 다리 위를 바라보라. 다리의 반과 반이 서로 다른 공법으로 건설됐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윗길을 걷던 남편이 말했다

“승일교가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로 다리 이름을 붙인 걸까?”

"남북이 반반씩 공사를 했는지도 모르죠."

근거 확인이 안 된 우리끼리의 얘기이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주상절리길은 연중 개방하지만 한탄강 물윗길은 겨울에만 생기는 길이다. 그런 만큼 개방 기간 확인이 필수이다. 평소 접근이 어려운 고석정까지 갈 수 있는 행운도 겨울이라 가능하다.

주상절리길 잔도는 절벽에 구멍을 뚫은 후 지지대를 세워서 만든 길이다.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잔도를 걷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코스도 있고,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게 되는 길도 있다. 주말의 혼잡을 피해 평일에 호젓하게 걷다 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바람과 햇살이 조화로운 길 위의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자연의 참맛은 그 속으로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맛을 잊지 못해 나는 언제나 길 떠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포근했다. 그래서 춥지 않을 거라 여기며 평창의 선자령으로 향했다. 인기 있는 눈꽃 산행지 임에 틀림이 없지만 언제까지나 겨울일 수는 없을 거라 여겼다. 땅이 질척이지 않기만을 바라며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우와~!" 아름다운 겨울왕국이었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걸음을 옮기기 어렵도록 발이 푹푹 빠졌다. 엘사와 올라프가 튀어나와 노래하고 춤출 것만 같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설국이었다. 포근한 강원도를 찾아왔던 아랫녘 동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꼭 기회를 만들어서 강원도의 추위를 제대로 맛 보여야겠다. 그렇다면 오는 겨울에 이들과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따뜻한 남쪽 나라 사람들에게 청량고추보다 더 매운 강원도의 추위를 제대로 맛 보이며 더불어 나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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