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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왜 이렇게 마음속에서 바람 소리가 날까

머리가 쏟아졌다. 마음속에는 황소바람이 들어온 듯했다. 사는 속도를 한 걸음 늦추라는 신호가 모스 부호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고, 내 몸은 깡통로봇처럼 찌그덕거렸다. 치유가 필요했다. 남편과 함께 '이상원미술관'을 어슬렁거렸다. 설치미술가 윤석남 작가의 작품 감상보다 이상원 알기를 제대로 한 것 같고, 미술관 순례보다 자연환경에 더 마음이 갔다. 솜털 같은 바람이 살랑거렸다. 병아리 색깔 햇살도 고개를 내밀었다. 말없이 걷던 숲길에서, 산딸기 한 알을 쓰윽 내민 남편의 손 위에 웃음이 걸려 있다. 찡그렸던 얼굴에 순간, 맑은 기운이 번졌다. 석류 열매가 터지듯이 웃음이 부서지자, 까무룩 하던 몸이 바로서기를 시작했다.      


두어 달 가까이 정신을 지배하던 두통은 고통스러웠다. 퇴직 이후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건만, 30년이 넘도록 달고 있던 공직의 계급장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자주 마음이 헝클어지고, 정신이 황폐해지고, ‘라테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려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걸었다. 매일매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빠르게 걸었다. 길가의 꽃봉오리가 만개하더니 스러지기 시작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꽃이 진 자리에 씨앗이 맺힌다. 윤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자연의 힘은 위대했다.      


길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때때로 마음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불면 길을 나선다. 우리의 삶은 빛과 그림자 같이 이분법적일 때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양강댐 건설로 수몰민이 생긴 것처럼, 횡성댐이 건설되며 다섯 개의 마을이 물 밑으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세월이 흘러 수몰민의 애환이 담긴 호반에는 자연스레 길이 생겼다.

‘횡성호수길 5구간’

분위기에 젖은 우울한 감성이 햇살의 부서짐에 따라 흔들렸다. 윤대녕의 『소는 여관으로 들어간다 가끔』과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이 떠올랐다. 수몰된 마을의 애환과 수몰민들의 비극에 마음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물속의 세상과 물 밖의 현세를 이어주는 나무. 그 나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윤대녕의 ‘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리번거렸지만 이는 현실이 아니었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듯이 봄바람을 쐬러 산골인지 시골인지 구분이 아리송한 북산면으로 들어갔다. 배후령터널을 빠져나가니 벚꽃이 흐드러진 물안마을이 나왔다. 물안마을을 지나니 산 첩첩 물 겹겹 건봉령 승호대가 나오고, 승호대를 거치니 오지 중의 오지 산막골이 숨어 있다. 봄이 오면 어디인들 꽃 대궐이 아닐까마는 벚꽃만큼은 물안마을이 전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곳일 게다. 꽃 터널이 된 벚꽃 길, 그 나무 아래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본다. 봄바람 타고 온 꽃향기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절정에 이른 벚꽃의 만개로 황홀경에 빠진다.


건봉령 승호대는 낮에 찾아가면 넋이 나가도 모를 만큼 물멍이 잘 되는 절경이, 밤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별자리 성지로 변모한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어 있는 곳이다. 승호대 지명과 글자는 소나무 화가 우안 최영식 선생이 짓고 쓰셨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곳에 서 보면 내가 왜 이리 주절대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한때 우안 선생의 작업실을 찾아가기 위해 굽이굽이 들어갔던 산막골은 대중교통 접근조차 안 되는 오지이다. 마음이 복잡해 머리가 지끈거리면 이곳으로 들어가 걸어보라. 세상만사가 한낱 일장춘몽 같아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바람을 잠재우는 명약에는 제주 중산간의 ‘두모악 갤러리’만 한 곳이 없다. 영혼의 울림으로 찍은 김연갑 선생의 바람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선생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바람이 잠잠해진다. 아니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삶을 만나기 때문이다. 바람을 찍기 위해 제주의 산과 들과 바다로 떠돌던 선생은 건강이 나빠져 스러졌지만 그때 찍은 바람은 두모악에 남아있다. 두모악 마당 감나무 앞에 서서 선생이 들려주는 바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고통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선생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을 찍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찍히지 않으려는 바람의 신경전이 우리 가슴에 전달되면 우리가 갖고 있던 마음속 바람은 김영갑의 바람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서편제 OST ‘살다 보면’이 가슴을 친다.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은 말,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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