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을 끼고 걸으면 평정심이 생길까

by 하람

손오공의 축지법이 내 하루 이동만 하랴. 익산에서 미륵사지를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살피고 돌아올 때 완주군에서 스치듯 들린 절이 있었다. 시루봉과 노적봉에 둘러싸여 연꽃이 된 절, ‘화암사’이다. 불명산의 가파른 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그 절을 보고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사랑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기품 있되 무겁지 않았고, 낡은 듯했으나 고풍스러웠다. 곱게 잘 늙어 우아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건축물이라는 ‘극락전’과 꽃비 흩날리는 누각 ‘우화루’는 각각 국보(316호)와 보물(662호)이었다. 어찌 그리 고울까. 절 나이 400살이 넘는 불력이 통한 듯 주지 스님과 원주 보살만이 무소유로 머무는 이 절은 용이 앉았던 자리라고 했다.


시인 ‘안도현’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의 말미를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 않으렵니다.’로 표현했다. 아까워서 시인 혼자만 알고 싶다는 말 아니겠는가. 나는 욕심 없는 그 절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갔다. 시인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 원주 보살이 손으로 극락전 처마를 가리켰다.

“저어기, 보이지? 저걸 하앙식 구조라고 하는 거야. 우리나라엔 오직 우리 절에만 있어요.”


우매한 중생의 눈에는 어려운 건축술일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하앙식 건축 구조를 찾아보았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에만 있는 건축 기술로 알려졌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이라 주장했었단다. 그런데 화암사에서 하앙 구조가 발견된 것이니 기술 이전의 경로가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정리가 된 것이다. 원주 보살은 용이 앉았던 자리도 알려 주었다.

“용의 머리는 극락전이야. 골짜기는 몸통이고, 꼬리는 불명산 초입에 그 흔적이 있으니 내려가면서 살펴봐요. 그리고 저어기 저 바위에 움푹 파인 자리 있지? 그게 용의 발자국이야.”

용의 발자국들은 절 옆 바위에 흩어져 있었다. 화암사의 꽃 바위(花岩)였다.

불명산의 화암사와 마찬가지로 오대산의 월정사도 천년 고찰이다. 월정사는 선재길이 좋아 가끔 걸으러 가면 들렀다 오지만, ‘오대산 문화축전’ 기간에 간 적은 없었다. 떠남의 즐거움이 예측하지 못했던 기쁨과 만나면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다. 우연히 날짜가 맞아 축전에도 참가하는 행운을 누렸으니 ‘꿩 먹고 알 먹고’였다.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했다.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가 만나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양한 볼거리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거리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눈 호강을 하며 기웃거리다 ‘선재길’로 들어섰다.


선재길은 스님과 불자들은 득도를 염원하면서, 화전민과 벌목꾼은 삶을 살기 위해 다녔던 옛길이다. 도로가 생기면서 이 길은 흐지부지 숲의 일부가 되었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다시 옛길을 복원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아갔던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이 길을 걷는 사람 누구나 득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선재길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월정사에서 시작된 가을은 계곡을 끼고 걷는 선재길에서 절정에 달해 중대 사자암까지 이어졌다. 황홀했다. 가을이 어찌 이리도 곱고 화려하단 말인가. 잡아두고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멸보궁에 이르자 가을은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탑돌이 하듯 빈 암자를 두 손을 모으고 돌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계절에 휩쓸릴 것 같았다. 주봉인 비로봉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연은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 산꼭대기에 이르자 가을은 이미 달아나고 있었다. 산 하나가 보여주는 계절의 극명한 변화가 인생을 보는 듯했다. 아기의 마음이 영글어 생각이 담기고, 희망 가득한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어른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듯이 자연이 주는 메시지는 극명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되새기며 월정사 밤 뜨락을 거닐었다. 알싸한 밤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으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잔잔했다. 삶의 우여곡절이 생각났고 힘들었던 기억이 되새겨졌다. 주저앉고 싶거나 도망가고 싶던 때도 떠올랐다. 그때마다 산이, 숲이, 길이 나를 품고 다독였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인생』이 떠오른다. 고난의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푸구이’처럼, 나도 세월 속에서 묵묵히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걷기는 나를 사유하게 한다. 그 때문일까, 가끔 자연에 동화된 느낌을 받을 때면 머리가 맑아진다. 마음의 때가 한 겹 벗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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