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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사찰을 끼고 걸으면 평정심이 생길까

손오공의 축지법이 내 하루 이동만 하랴. 익산에서 미륵사지를 포함한 백제문화유적지구를 살피고 돌아올 때 완주군에서 스치듯 들린 절이 있었다. 시루봉과 노적봉에 둘러싸여 연꽃이 된 절, ‘화암사’이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그 절을 보고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사랑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기품 있되 무겁지 않았고, 낡은 듯했으나 고풍스러웠다. 곱게 잘 늙어 우아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건축물이라는 극락전과 꽃비 흩날리는 누각 우화루는 각각 국보(316호)와 보물(662호)이었다. 어찌 이리도 고울까. 절 나이 400살이 넘는 불력이 통한 듯 주지스님과 원주보살만이 무소유로 머무는 이 절은 용이 앉았던 자리라고 했다.      


시인 안도현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의 말미를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 않으렵니다.’로 표현했다. 아까워서 시인 혼자만 알고 싶다는 말 아니겠는가. 나는 욕심 없는 그 절을 다시 찾아갔다. 시인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길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원주보살이 손으로 극락전 처마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저걸 하앙식 구조라고 하는 거야. 우리나라엔 오직 우리 절에만 있어요.” 그러나 우매한 중생의 눈에는 어려운 건축술일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하앙식 건축 구조를 찾아보았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에만 있는 건축 기술로 알려졌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었단다. 그런데 화암사에서 하앙 구조가 발견된 것이니 기술 이전의 경로가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정리가 된 것이다. 원주보살은 용이 앉았던 자리도 알려 주었다.

“용의 머리는 극락전이야. 골짜기는 몸통이고, 꼬리는 불명산 초입에 그 흔적이 있으니 내려가면서 살펴봐요. 그리고 저~기 저 바위에 움푹 파인 자리 있지? 그게 용의 발자국이야.” 용의 발자국들은 절 옆 바위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은 온통 꽃바위(花岩) 천지였고.       


떠남의 즐거움은 예측하지 못하는 반가움에 있다. 부석사를 가다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였다. 함께 떠난 몽 선생이 챙겨 온 아침밥을 보고 입 꼬리를 귀에 걸었다. 세상에나~! 새벽 일찍 일어나 구웠다는 10곡 통밀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마실 것으로 뱅쇼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고 핸드 드립으로 커피까지 내려왔다. 한 사람의 수고로운 새벽이 또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 행복으로 심어졌다. 부석사까지 눈에 하트를 뿅뿅 날리며 단숨에 도착했다.     


천왕문을 지나고 월방을 건너 안양루를 바라보니 정다움은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무량수전의 당당함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조사당을 오르다 삼층석탑 앞에서 고개를 돌리니 새로 지어진 건물들로 눈이 어지러웠다. 선비화도 조사당 처마 밑 마른땅에 서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바람조차 들고나기 힘들도록 촘촘한 보호 울타리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량수전에는 진흙으로 빚어 유명한 ‘소조여래좌상’이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이다. 이 훌륭한 소조여래께서 금빛 옷만 자랑하지 마시고, 가람의 배치에도 눈을 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발걸음을 돌린다. 역사의 무게와 세월의 흔적을 입고 있는 옛 사찰이 그립다.     


오대산을 남편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선재옛길이 개방된 이후 처음 가는 데다가 ‘오대산 불교문화 축전’ 기간 중이라 설렘이 있었다. 월정사에서 시작된 불타는 가을은 선재길을 걷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감탄은 중대 사자암까지 계속 이어졌다. 적멸보궁에 이르자 비로소 가을의 주춤거림이 보였다. 적멸보궁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남편은 묵묵히 작은 돌멩이를 주워 와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땅 위에 7층 석탑을 쌓고 합장을 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 아빠라서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자기들의 아빠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를. 남편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져 언제 어디서나 밝았으면 좋겠다.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자존감이 높아 어느 자리에서나 바르고 당당했으면 좋겠다.

자연은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주봉인 비로봉에 이르자 가을은 이미 달아나고 있었다. 산 하나가 보여주는 계절의 극명한 변화가 속세를 보는 듯했다. 아기의 마음이 영글어 생각이 담기고, 희망을 품으며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듯이, 우리는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환경을 생각해야 함도 이런 까닭이다.    

  

마음속에 달 하나를 품고 월정사 밤 뜨락을 거닐었다. 알싸한 밤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으나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잔잔했다. 절 아래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맑고 깨끗한 보름달이 계속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걷기는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가끔 나 스스로 자연에 동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면 인지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 같다.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걸을 때는 구경거리가 넘쳐나 눈이 바쁘다.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유쾌하고, 흐리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다. ‘바늘 가는데 실 간다’는 속담처럼 걷기만 잘하면 즐거움에 더해 운동의 효과까지 따라오니 이 또한 좋았다. 그러니 걷기 예찬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걷기를 생활화한 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 근육이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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