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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마음이 복잡하면 신발을 바꿔 신자

‘부산걷는길연합’이 ‘2023 오륙도 투나잇 걷기 대회’를 4월 1~2일 이틀 동안 부산에서 개최했다. 해넘이가 환상적인 다대포 바닷가를 해 질 녘에 출발해 해운대에서 해맞이를 하며 끝내는 행사였다. 호기롭게 참가 신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깨의 극상근이 찢어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콜라겐 주사를 놓으며 의사가 말했다. “이번 주사는 좀 아플 겁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해외 고산 트레킹에서도 낙오되지 않은 사람이라고요. 이까짓 것쯤이야.’ 그런데 의사는 진통제, 소염진통제, 위장약 이렇게 세 종류의 약을 5일 치나 처방해 주었다. 두 종류의 진통제가 들어있는 처방전을 받아 든 나는 의아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내 허세의 껍질을 한 겹 벗겨내며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걷기는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한 일등공신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 마음을 잡아줬고, 정신이 흔들릴 때는 정신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걷기를 시작할 즈음에는 운동화만 신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운동화도 운동화 나름이었고, 복장도 복장 나름이었다. 신발 밑창의 두께 여부에 따라, 복장도 땀 배출 여부에 따라 몸의 반응과 걷기의 쾌적함이 달랐다. 어떤 차림새로 걷느냐에 따라 효과와 즐거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번의 길 떠남은 특히 준비를 꼼꼼하게 했다. “군인 행군보다 더 셀 것 같은데 당신 괜찮겠어?” 56km를 밤새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한 말이었다. 나이는 의식하지 않은 채 의욕만으로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 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갖고 갈 가방부터 결정 장애를 일으켰다. 물 한 병 넣을 수 있는 작은 것을 지니고 홀가분하게 걸을지, 필요한 것들을 모두 넣을 넉넉한 크기를 택할지 갈팡질팡하다가 내 컨디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방으로 결정했다.   


결국 백팩은 28리터의 피엘라벤 싱기가 뽑힌 것이다. 걸으며 마실 물 등속과 밤길 추위에 대비한 비상용 얇은 패딩을 넣으려면 이 정도 크기가 적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배낭은 주 수납부가 길게 지퍼로 이어져 있어 전면 개방이 가능하다. 안쪽의 내용물을 쉽게 꺼낼 수 있는 편리함에 나는 주로 여행용으로 사용한다. 배낭은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심하게 넘어질 경우 척추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 만큼 자기 몸에 잘 맞는 것으로 준비함이 중요하다. 일상에서 걸을 때는 힙팩이나 슬링백에 물병을 넣고 가볍게 걷는다.     


스틱은 늘 사용하던 것이라 익숙하지만 다시 점검을 하고 스틱 러버도 챙겼다. 흙길을 걷거나 산을 오를 땐 스틱만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처럼 포장된 길을 걸을 때는 스틱 러버를 스틱 촉에 끼워 사용한다. 러버를 끼우고 걸으면 스틱이 충격을 흡수해 손목의 부담도 덜하고 스틱 촉과 포장도로와의 마찰음도 줄여준다. 거기에 더해 양손으로 스틱을 사용하면 네 발로 걷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 체중을 분산시켜 무릎과 발목의 부담을 덜어줌은 물론이고 팔을 사용하게 되므로 전신운동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걸을 때는 굳이 스틱을 사용하진 않는다.   

   

신발은 큰마음먹고 장만했던 잠발란의 중등산화를 신으려 한다. 이 신발은 주로 해외 고산 트레킹용으로 신어왔지만 장거리 걷기가 조심스러워 안전을 위해 선택했다. 밑창이 두껍고 발목을 잘 잡아주어 오래 걸어도 발의 피로감이 덜한 신발이다. 이번에 걷게 될 길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밤새 걸을 때 오는 발바닥의 피로를 감안해 결정했다. 일반적인 도보여행이나 산행은 트레킹화나 경등산화를 신는다. 산책 겸 가벼운 운동으로 걷는 마을길은 밑창이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뒤꿈치부터 땅을 디뎌 발가락 끝에서 한 걸음이 끝나도록 걷는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신발은 발볼이 넓고 발바닥이 편한 ‘호카오네오네’의 제품들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신발 선택은 무척 신중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걸을 때 신발이 문제를 일으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발에게 잘 보여 하루라도 더 걷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다.     

  

입고 갈 옷의 상의는 땀 배출이 잘 되는 기능성 티셔츠에 생활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로 결정했다. 혹여 비라도 내린다면 낭패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의 역시 기능성 바지로 챙겼다. 신축성이 좋아 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통기용 지퍼가 있어 필요시 체온 조절까지 가능한 바지이다.

양말은 쿨맥스로 만들어진 발가락 양말을 속에 신고 그 위에 등산용 양말을 덧신으려고 한다. 이 역시 장시간 걷는 것에 따른 발의 피로를 고려했다. 평소 걸으러 나갈 때는 땀을 흡수하면 빠르게 증발시키는 쿨맥스 양말을 한 켤레 신는다.

모자는 셋째가 전역하며 선물한 ‘제로그램’에서 만든 아웃도어용 벙거지 모자를 꺼내 놓았다. 대낮 마을길을 걸을 때는 대부분 볼캡을 쓰고, 산이나 들길을 걸을 땐 햇빛 차단을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쓴다. 하지만 이번 걷기에는 아이에게 선물 받은 모자를 써서 기분을 올리려 한다.

장갑은 안전하게 봄가을용과 여름용 반장갑을 모두 챙겼다. 부산의 날씨에 따라 어느 것을 사용할지 결정할 것이다. 이외에도 무릎보호대와 손수건, 넥게이터도 넣었다. 낮 시간대의 걷기라면 햇빛 차단용 크림과 자외선 차단 선글라스까지 챙겼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걸으러 나갈 때는 물병과 컵은 다회용으로 챙긴다. 건강한 자연을 위한 선택이다.   


최근에는 스포츠용 의류와 용품 업체가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당연히 나는 재생 폴리에스터를 사용했는지, 윤리적으로 생산된 재료를 사용했는지 등을 따져가며 구입한다. 흠이라면 가격이 과히 싸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걷는 게 좋다. 조청으로 단 맛을 낸 사탕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의 달콤함이나 먼 산 바라보듯 눈을 들어 등줄기를 곧추 세웠을 때의 꼿꼿함도 좋아한다. 산길을 걸을 때는 또 어떠한가. 들꽃과 새소리의 청량함과 바람의 보드라움이 나를 무장 해제시킨다.

누구나 햇살을 받으며 걸어보라. 우울할 틈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주춤거릴 일도, 다리가 망가질까 봐 걷기를 저어할 일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나는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닌다. 걷다 보면 젊은이라도 된 양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근력이 강화되고 골밀도가 증가할 테니 나 같은 사람에겐 안성맞춤이다. 내가 한 것이라곤 신발을 걷기 편한 것으로 바꿔 신었을 뿐이다. 어떤가. 이 행복한 걷기에 동참하지 않으시겠는가. 마음이 복잡하면 길 위에 서 보라.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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