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 글자 뭐지?’
낯설었다. 서양화가 황효창 화백의 화실로 들어설 때였다. 투명한 유리문에 ‘작업실’ 글자가 뒤집혀 있었다. 안에서 밖을 향해 작업실을 써 놓았기에 밖에서는 엉뚱하게 보였다. 까닭을 여쭙자 담백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 편하니까...” 멋지고 통쾌했다. 당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원로 작가의 여유와 배짱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피에로가 주인공인 작업실에서 듣는 노 작가의 그림 이야기에 ‘예가체프’ 향미가 더해지니 삶의 이야기가 되었다.
인생을 들려주는 작가의 미소는 천진난만 바로 그것이었다. 해탈한 듯한 선생의 마음을 닮고 싶어졌다.
아랫녘에 사는, 바람 같고 햇살 같은 길동무 둘이 다녀갔다. 이 두 사람은 지향점이 비슷해 생각이 통하는 친구들이다. 시간을 쪼개 삶을 누릴 줄 아는 동무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삼악산과 팔봉산을 하루에 모두 올랐다. 멀리서 왔기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강행군을 한 것이다. 삼악산에서는 만난 게 반가워 웃음을 흩뿌렸고, 팔봉산에선 다른 이들이 엄두 내지 못하는 해산 굴을 빠져나와 등산객들의 부러움을 온몸으로 받았다.
이 두 사람에게서는 좋은 기운이 나온다. 그 때문인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많아진다. 성정이 깨끗하고 정신이 해맑아 주위에 좋은 에너지를 뿌리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지내다 불현듯 생각나 다시 만나도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친근하다.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사람에게서는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세월이 만든 연륜으로 담백하고 진중하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석탑처럼 모난 곳이 없다. 길 위에 뿌린 시간으로 닳고 닳아 두루뭉술해진 까닭이다. 이런 무던함도 닮고 싶다.
1987년, 내가 도서관 사서로 처음 근무를 시작한 곳은 북한과 가까운 철원군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당시의 철원은 매우 낯설었다. 사방팔방 군인 천지였기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그곳은 내게 긴장의 땅이었다. 밤에 잠을 청하면 윙윙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편안하게 잠들지를 못했다. 북한에서 송출하는 대남방송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상황이 적응되지 않아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30년이 넘어 다시 찾은 철원은 예전과 다른 이유로 낯설었다. 옛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덩그러니 홀로 서 있던 옛 북한의 노동당사 주변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바람에 고즈넉한 예스러움을 잃어버렸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했던 노동당사는 세월의 흔적을 껴안은 채 흉물스러운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됐던 곳을 신고만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더니 이런 변화를 초래했다. 젊은 시절 추억 한 자락이 지워졌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의 반영인 걸 어쩌겠는가.
1953년 7월 27일에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됐으니, 2023년 7월 27일은 비무장지대(DMZ)가 일흔 살이 되는 날이었다. 한탄강은 승일교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데 남한과 북한은 아직도 비무장지대를 가운데 두고 있다. DMZ! 젊은이들은 이 비무장지대를 ‘Dream Making Zone’으로 부르자고 했단다. 그래서 난 민족상잔의 슬픔을 ‘비무장지대’라 쓰고 ‘희망’이라고 읽는다.
나에게 희망은 살아 있음이다. 내 몸속의 핏줄이고, 펄떡이는 심장이다. 희망이 없으면 길 위의 삶을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 예순을 넘기니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그러니 나는 이제 진화할 일만 남았다. 보다 더 맵시 있게 살기 위한.
내가 말하는 ‘맵시 있게’는 외모를 말함이 아니다. 어느 날 『알라딘과 요술 램프』 속의 ‘지니’가 나타나 “너는 ‘얼굴의 기미’와 ‘구멍이 숭숭한 뼈’ 중에서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당연히 얼굴의 기미를 선택할 것이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위해 햇빛을 피하기보다는 얼굴에 기미가 낄지언정 비타민D를 흠뻑 흡수해 건강을 챙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빛에 타 검어진 얼굴이겠으나 반짝이는 눈과 튼튼한 다리로 걸어보지 않았던 길 위에 서 있고 싶다. 이런 생각의 내가 어찌 외모에 관심이 많겠는가. 내가 원하는 ‘맵시 있게’는 단연코 내면의 것이다.
나는 나다운 ‘맵시 있게’를 추구한다. ‘된 사람’이길 언제나 희망하고 ‘든 사람’이길 원하지만 결코 ‘난 사람’이길 바라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좋은 이웃들과 맵시 있게 어울리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제니퍼와 이우넛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