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람 Oct 18. 2023

나는 제멋에 겨워 산다

‘시간과 돈은 고무줄이다.’


누군가 내게 시간과 돈을 정의하라 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동안의 생활이 그랬다. 그날그날 처리할 일들이 많을 때면 시간을 쭉 늘려서 썼다. 잠을 조금 줄이고 TV를 덜 보면 가능했다. 드라마를 안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하면 라디오를 켜 놓고 일을 하면 되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마쳐야 하는 작업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해결했다. 이런 생활이 몸에 붙으니 하루가 남들보다 길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난 것이 가장 좋았다.

돈 역시 마찬가지다. 호사를 부릴 만큼 넉넉히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렇다고 궁상떨며 살지도 않는다. 내 분수껏 갖고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껏 쓴다. 남들이 한우를 먹을 때 난 삼겹살을 맛나게 구워 먹고, 비행기를 탈 일이 생기면 저가항공을 타거나 비수기에 미리 티켓을 구매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퇴직 전의 일이다. 독학으로 역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강원대학교 모 교수가 손금을 읽어 주었다. “보이는 그대로를 말할 거예요. 그러니 어떤 얘기를 듣더라도 놀라거나 섭섭해하지 않깁니다.” 공대 교수가 역학을 공부했다는 것이 놀랍기도, 신기하기도 하던 터였다. 한참 동안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김 선생은 초반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네. 그러나 늘 노력하며 살기 때문에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아요. 어려움이 생기면 도와주는 사람이 항상 나오겠는데요.” 신났다. 이보다 더 좋은 덕담이 어디 있겠는가. 손금이 정말 그렇게 읽혔는지, 나를 위해 지어낸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편이 되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내 편이다.        

 

그때부터 이웃의 좋은 에너지는 항상 내게 긍정의 힘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정말 손금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마음에 나도 이웃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 두리번거리니 말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중학교 두 곳의 특수학급 아이들과 그림책으로 수업을 했다. 내가 정식으로 수업 한 시간을 맡을 수 있도록 특수교사가 학교장의 허락을 받았고, 나는 쉬는 월요일에 재능기부를 했다. 정신적인 성장이 또래보다 조금 늦된 것만 빼면 다를 게 없는 아이들과 어울려 수업한 지 10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한 아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까만 비닐봉지를 건넸다. 또박또박 눌러쓴 삐뚤빼뚤한 손 편지와 ‘자갈치’ 과자 한 봉지, 그리고 '비타 500' 한 병이 들어 있었다.       


‘김옥분선생님책읽어주셔서감사합니다.앞으로훌륭한사람이되겠습니다.’     


울컥했다. 이때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휴일 한나절을 썼을 뿐이고, 제일 잘하는 것으로 한 시간 동안 아이들과 놀았을 뿐이었다.

이 선물은 두고두고 힘이 되었다. 세상과 더 열심히 소통하라는 격려이기도,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직장에서 겸직 허가를 받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만 4년 동안 진행했다. 방송국에서 머무는 시간은 당연히 외출 처리를 했다. 몸은 고됐으나 정신은 더 맑아졌다. 늘 가던 길을 잠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어봄은 힐링이었다. 새로운 세상에서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과 만나는 재미와 청취자로부터 받는 피드백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인정이었다.


퇴직한 이후 모르는 전화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홍천문화재단 이사라며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밝힌 남성이었다. 나와 연락을 취하려고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알 수가 없었단다. 결국 홍천군청을 통해 춘천시청에서 전화번호를 받았다고 했다. 방송으로 내 직장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프로그램은 없어졌고 직장에선 퇴직한 이후였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를 했던 것이다.     


홍천문화재단의 조 이사는 열정적인 마을 이장이었다. 사라져 가는 농촌의 겨리 문화를 살리기 위해 ‘홍천겨리농경문화보존회’를 만들었고, 강원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시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나를 찾은 까닭은 시연할 논에서 사용할 소개 원고와 방송용 녹음자료를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열정에 감화되어 기꺼이 원고를 쓰고 녹음을 해 보냈다. 당연히 재능기부였다. 원고는 내가 썼고, 녹음은 방송국에서 함께 방송하던 진행자가 도와주었다. 이후 홍천겨리농경문화는 홍천군 최초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겨리질’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로 논을 갈아엎는 작업이다. 지금도 해마다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참가 희망자를 접수받아 그들이 직접 겨리질로 논을 갈아보는 행사를 진행한다. 당연히 행사장에는 내가 쓰고 녹음했던 겨리농경문화 소개가 울려 퍼진다. 작은 노력으로 큰 기쁨을 맛봄은 남몰래 즐기는 나만의 행복이다.  

조성근 이사는 여전히 내게 연락을 한다. 산나물 축제가 열렸다며 명이나물과 취나물을 챙겨주고, 옥수수 맛 좀 보라고 맛나게 쪄진 찰옥수수를 보낸다.        


세상과 소통하며 사는 맛은 참 좋다. 제멋에 겨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기꺼이 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삶이 가능할지 예측할 수 없기에 나는 지금도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오늘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삶을 놀이처럼 즐길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내 지난날을 회상할 때가 오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삶의 속도를 늦췄더니 들꽃이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