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는 스스로 찾는 것이다. 인생을 비극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비극이, 희극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 된다. 우리는 어차피 태어나고 말았다는 분명한 결과 앞에 서 있으므로 오직 잘 살아야 한다는 것만이 기쁨이며 법칙이다. - 윌리엄 사로얀-’
부안 내변산을 갈 때였다. 산행 중에 들른 월명암에서 김 대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낙조대의 전망이 기막히다던데.” 그러면서 주지스님 계시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님, 낙조대를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쬐깐한 눈으로 뭘 다 보려 하느냐. 보이는 것만 보고 가지”
스님께서 우리를 쓰윽 훑어보신 후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강하게 한 방 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다. 그리곤 스님께서 일러준 길로 가서 무릎을 쳤다. 낙조대는 중생에게 베푼 특혜였다. 절 식구가 아니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눈 호강을 했다. 트인 전망과 산세가 아름다워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러나 관음봉의 절경과 내소사의 꽃살문을 건성으로 훑을 수밖에 없었다. 스님의 말씀이 너무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쬐깐한 눈’이지만, 세상을 제대로 보려 하고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자기 손해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타박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고스럽더라도 내가 똑바로 만들지 않으면 바르게 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보라. 길을 달리다 오르막이 나오면 주춤거리며 멈춰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속력을 내어 달린다. 기어변속을 하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 차고 올라간다. 그러고 나면 좋은 길이 나오고, 시원한 바람도 만나며 목적지까지 무리 없이 도달하게 된다. 그러니 기울어진 운동장 어쩌고 저쩌고는 핑계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고 여긴다. 세상살이가 어디 꽃길만 있던가. 이웃과 조화롭게 어울리다 보면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을 꾹꾹 눌러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 아가다 보면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은퇴자의 삶을 살고 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과 스마트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지혜와 여유가 들어와 앉았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잡는 법을 가르치는 단계까지 온 건가 싶기도 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아들아이가 말했다.
“엄마, 재산이 있으면 우리 세 명에게 똑같이 나눠주세요.”
“엥! 너도 알다시피 재산이 뭐가 있니? 우리가 손 내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아파트 한 채는 있잖아요.”
“이놈아, 그건 엄마 아빠가 죽을 때까지 먹고살아야지.”
셋째가 무슨 생각으로 꺼낸 얘긴지 짐작은 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내 아이들이 부모가 뭔가를 알아서 해 줄 거라 여기면 안 된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라 착각하면 큰 오산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세 명의 자식 중에 더 마음 쓰이는 아이가 있다. 조금 도와주면 더 빨리 안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마음을 가다듬는다. 은퇴한 부모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곧 자식을 돕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내가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은퇴 이후 삶이 소박해졌다. 삼십여 년이 넘도록 바람 잘 날 없는 가슴으로 살아오다 남편과 나만의 2인 가족이 되고 보니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건만,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할 일을 찾아 하루를 종종거린다. 그래도 좋다. 친한 이웃이 스스럼없이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다. 그러니 무슨 욕심을 부리겠는가. 내 삶을 누리는 것을 낙으로 여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즐거움,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되는 자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았다는 해방감...... 손가락으로 세기 바쁘다.
이제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려 한다. 남 탓을 하다 보면 나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지난 시절의 아쉬움은 나이의 힘으로 극복하면 될 일이다.
나는 여전히 ‘쉬지 않고 꾸준히, 서두르지 말고 여유롭게’를 지향한다.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순간을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인 인문이고 인간다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