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장래 희망은 '멋진 할머니'

by 하람

내 장래 희망은 ‘멋진 할머니’이다. 이 꿈은 아이들의 협조가 없어 요원한 듯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계속 떠벌리고 다녔다. 손주가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의 큰딸과 맏사위의 아기가 태어났다. 아직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아가이지만 이 아이와 함께 놀 생각을 하면 젊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가 자라 생각이 머리에 들어갈 즈음이면 나는 첫 손자의 손을 잡고 도서관 나들이를 할 것이다. 병아리보다 조금 더 큰 아이겠지만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 주련다. 예전에 내가 겪은 사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현역으로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종합자료실에 근무하는 후배 사서가 인터폰을 했다. 와서 좀 도와달라고. 오래된 미납도서가 있는 이용자 한 분이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린다고. 깜짝 놀랐다. 네다섯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아들을 동반한 아빠가 오래된 미납도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을 빌리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분하게 설명을 했건만 자기 성질을 못 이긴 이용자는 어린 아들 앞에서 신용카드를 데스크로 던지며 큰 소리로 말했다.

“책 값 결재하세욧.”


도서관은 영업장이 아니니 당연히 카드 결제를 할 수 없다. 분실도서는 직접 같은 책을 사 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현금으로 변상을 받는다. 이용자가 사 온 동일한 책은 분실(미납) 도서의 정보를 그대로 물려받기에 전체 장서 수에 변화가 없다. 그러나 현금 변상은 국고로 세입 조치된다. 결국 도서관의 책이 한 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장 먼저 나의 손자에게 ‘도서관에선 조용히 해야 된다’고 알려주겠다. 다른 사람의 이용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읽는 책은 깨끗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도 가르치겠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법, 누구나 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테니 말이다. 조금 더 자라 학교를 다니면 도서관과 독서실의 차이를 알려 주겠다.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고, 정보를 얻고,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평생교육기관이다. 그런 만큼 개인 학습을 하는 곳이 아님을 강조하겠다. 학습을 위한 공부는 자기 방이나 독서실에서 하면 될 일이다. 청년기에 접어들면 도서관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알려주겠다. 도서관은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주민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가 마음에 드는 강좌를 수강하거나 참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적 성장이 일어난다. 다른 이용자를 보며 지적 자극을 받기도 할 것이다.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간식 만들기도 책 놀이로 하고 싶다. 관련 책을 읽은 후 자연에서 나온 건강한 식재료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소꿉놀이하듯이 함께 만들고 깔깔대며 먹을 것이다.

시골집의 굵고 튼튼한 나무 위에 작은집을 올리고도 싶다. 이런 집이 건축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는 건축 공부를 한 아들에게 알아보라 하겠다. 마치 새집처럼 조그맣겠지만 아이 한 둘이 놀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에서 아이들이 투명한 웃음을 하늘로 날린다면 내가 더 행복할 것 같다.


나는 내 성장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눈높이를 맞추고 말이 통하는 할머니로 지내려면 빠른 사회변화를 따라가야 하니 말이다. 비록 돋보기를 쓰겠지만 아이 눈높이에 맞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소신껏 행동하는 사람으로 아이가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봄이면 남편의 놀이터에 나가 아이와 함께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싱싱한 푸성귀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 아이가 자라 할머니 집에 오면, 밤마다 모깃불 연기에 눈을 비비며 아이와 시시덕거리고 싶다. 하모니카 불듯이 찐 옥수수를 먹으며 뒹굴고, 콩 타작을 위한 도리깨질도 아이와 함께 놀이처럼 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을 하려면 나는 건강해야 한다. 몸 관리와 마음 관리를 잘하는 할머니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이 건강 아닌가. 허리를 삐끗해 옴짝달싹도 못한 적이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건강관리가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건강이 주제인 프로그램이 나오면 자연스레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된다. 건강하지 않은 장수는 축복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삶의 질을 담보로 하기에 더욱 그렇다. 골골 백세가 되지 않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멋진 할머니의 이미지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나를 경영하는 CE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