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나를 경영하는 CEO다

by 하람

‘[Web 발신] 우○○ 님이 보내신 <시경 강의 1: 주남 소남..> 선물 도착...

나의 계정> 기프티북 코너에서 수동 등록하실 수도 있습니다. 상세 안내는 알라딘에서 기프티북을 검색하세요.’


손 전화에 찍힌 문자를 읽고 좋아서 팔짝거렸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스승으로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당신의 강의가 묶인 책을 선물로 보내신 것이다. 따끈따끈한 책 한 권으로 내가 엄청 잘난 사람같이 느껴졌다. 은퇴자라 여기던 의식 저편에서 섬광 한 줄기가 강한 힘으로 정신을 깨웠다. ‘아! 내가 현재진행형 인간임을 잊고 있었구나.’ 손 놓고 있던 쓰는 작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허영심은 털어내고 처음 마음 그대로 진솔하게 써야겠다.


퇴직하기 전의 일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추진을 위한 회의가 있었다. 막 참가 등록을 마쳤는데 근처에 있던 중년의 여성이 아는 척을 했다.

“하람 선생이에요?”

“네~.”

“강원대학교 국문학과 김 교수도, 남산강학원 문 선생도 선생님 얘길 하던데. 춘천에서 처음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사람이라고.”

부끄러웠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고, 내가 더 즐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은 재야의 인문학자로 고수 중의 고수였다.

도서관 근무는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당연히 도서관의 모든 일이 재미있었다. 언제나 사서를 천직이라 생각하는 사람답게 움직였다.


나는 ‘~답다’를 지금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하람답다, 사서답다, 엄마답다.... 그래서 언제나 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얼굴 표정이 내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나 잠들기 전에 항상 거울 앞에서 내 얼굴 표정을 살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입꼬리를 올려보기도, 눈에 힘을 주어 보기도 했다. 내 표정이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 여겼기에 항상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말이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누구든 나이 마흔을 넘기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 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했다. 미혹(迷惑)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40세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도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얼굴과 표정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나는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있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책임져야할 CEO이다.’가 그것이다. 일흔을 향해가는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중에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도 있을 것이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면의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길의 굴곡으로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 지금이 좋다. 어딜 가도 낯선 분위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며 하고 싶은 걸 과감히 실행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 것도 마음에 든다. 어디서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기쁨을 찾는 기쁨’의 참맛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가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

29살에 결혼해서 30대는 직장과 육아와 살림에 파묻혀 사느라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알 경황이 없었다. 그저 살아내는 것에 급급했다. 40대에 들어서니 비로소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부터 내 손이 덜 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 40대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인 줄 알았다. 그런데 50대가 되어보니 50대야말로 인생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청소년으로 성장해 챙길 일이 많이 줄었고, 그만큼 내 시간이 늘어나 나를 위한 공부나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60대가 되어보니 60대야말로 인생의 황금기였다. 아이들은 모두 독립해 나갔고, 나는 무엇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자유부인이 아닌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년에는 적당한 돈과 건강과 친한 이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 이의를 달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로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배우자와 사별을 할 수도, 친했던 이웃이 먼저 떠날 수도, 살기 바쁜 자식들이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면 고독과 상실감에 마음이 힘들 것만 같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놀이가 가끔은 혼자 놀기이다. 홀로 산길을 걷거나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나만의 놀이도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가 나 자신을 브랜딩 해야 한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