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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나는 나를 경영하는 CEO다

‘[Web 발신] XXX 님이 하람 선생님께 보내신 <시경 강의 1: 주남 소남..> 선물 도착...

나의 계정> 기프티북 코너에서 수동 등록하실 수도 있습니다. 상세 안내는 알라딘에서 기프티북을 검색하세요’     


손 전화에 찍힌 문자를 읽고 좋아서 팔짝거렸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스승으로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당신의 강의가 묶인 책을 선물로 보내신 것이다. 따끈따끈한 책 한 권에 내가 엄청 잘난 사람같이 느껴졌다. 은퇴자라 여기던 의식 저편에서 섬광 한 줄기가 강한 힘으로 정신을 깨웠다. 아! 현재진행형 인간임을 잊고 있었다. 손 놓고 있던 쓰는 작업에 다시 손을 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허영심은 털어내고 처음 마음 그대로 차분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퇴직하기 전의 일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추진을 위한 회의가 있었다. 막 참가 등록을 마쳤는데 근처에 있던 여성이 아는 척을 했다.

“하람 선생이에요?”

“네~.”

“강원대학교 K 교수도, 남산강학원 OOO 선생도 선생님 얘길 하던데. 춘천에서 처음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사람이라고.”


부끄러웠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고, 내가 더 즐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은 재야의 인문학자로 고수 중의 고수였다.    

  

도서관 근무는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 중에 얼마나 될까. 당연히 도서관의 모든 일이 재미있었다. 도서를 고르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며 진행하는 것들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했다. 언제나 ‘사서’를 천직이라 생각하는 사람답게 움직였다.


나는 ‘~답다’를 지금도 좋아한다. 하람답다, 사서답다, 엄마답다...... 그래서 언제나 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내 얼굴이 나의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나 잠들기 전에 항상 거울 앞에서 내 얼굴 표정을 살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입꼬리를 올려보기도, 눈에 힘을 줘 보기도 했다. 내 표정이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 여겼기에 항상 밝은 표정으로 마음을 넉넉히 가지려고 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누구든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 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미혹(迷惑)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40세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도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나는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 있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CEO이다’가 그것이다. 예순이 넘은 지금도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중에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도 있을 것이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면의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생길의 굴곡으로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 지금이 좋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참 많다. 어딜 가도 분위기에 쉽게 적응한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과감히 실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기쁨을 찾는 기쁨’의 참맛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돈이 많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가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 29살에 결혼해서 30대는 직장과 육아와 살림에 파묻혀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알 경황이 없었다. 그저 사는데 급급했다. 40대에 들어서니 비로소 아기장수 ‘우투리’처럼 겨드랑이에서 보이지 않는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부터 내 손이 덜 갔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40대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인 줄 알았다. 그런데 50대가 되어보니 50대야말로 인생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청소년이 되어 있어 거의 챙길 일이 없어졌고, 내 시간이 늘어나 공부도 취미생활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웬걸! 60대가 되어보니 60대야말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아이들은 모두 독립해 나갔고, 나는 무엇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게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년에는 적당한 돈과 건강과 친한 이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 이의를 달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로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배우자와 사별을 할 수도, 친했던 이웃이 먼저 떠날 수도, 살기 바쁜 자식들이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롭다고 느껴지면 고독과 상실감이 감당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놀이가 가끔은 혼자 놀기이다. 나 홀로 산행을 떠나고, 혼자 카페를 가기도, 도시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나만의 놀이도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브랜딩 한다. 나는 '하람'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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