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그 혹독함은 결국
내게서 가장 만만한 존재들에게 향했다.
아이들이었다.
“엄마가 게임 시간 늘려줬으면 공부도 그만큼 해야지!”
“사람들 앞에선 인사도 똑바로 하고, 눈치 좀 챙겨야지!”
악을 쓰듯 닦달하는 동안 아이들의 놀란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엄마, 잘못했어… 잘할게…”
돌아보면, 그것은 아이들의 잘못만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엄마가 제 감정을 다루지 못해
그 무게를 아이들에게까지 실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쏘아붙였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나에게 안겼다.
못난 엄마인데, 이것뿐인 엄마인데도 아이들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했다.
언제든 와서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사춘기 아들도 내가 팔을 벌리면 여전히 든든하게 안겨왔다.
그 순간, 말없는 사랑이 두 팔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나는 살아가야 했다.
살아갈 이유가 너무나 분명했다.
그렇게 상담 스케줄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편안한 말 한마디, 숨 쉴 틈 같은 시간이
조금씩 나를 되돌려 놓았다.
어떤 상태의 나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40년 넘게 굳어진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불쑥 튀어나오는 오래된 의식이 나를 다시 어두운 곳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구덩이에 빠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었다.
예전엔 허우적대기 바빴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 또 구덩이구나.
흙 묻은 손을 바라보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그 자리에 있는 나를 인정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
나는 나를 다독이는 중이다.
그리고 조금씩 숨이 쉬어진다.
아마…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